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5월까지(by May) 회담을 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은, 4월 말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남-북-미 ‘2축3국’ 담판이 가시권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최대 제재’가 당장 이완되진 않겠지만, 군사 옵션까지 거론되던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대화 국면으로 선회했다. 김정은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을 자제(refrain)할 것임을 밝혔다.

이런 극적인 선회에는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대북 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8일 백악관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길 바라고, 추가 핵·미사일 실험은 자제하며 비핵화 의지도 있다’ 등의 김정은 메시지를,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와 함께 전달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압박 정책으로 현 상황에 이를 수 있게 됐음을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감사 뜻도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방북 결과 브리핑에 감사하면서 5월까지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백악관 측은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하고 장소와 시간은 앞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제부터 2개의 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이 어지럽게 전개될 것이다. 장소·시기 등 회담 외형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 부분은 북한 핵 폐기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모아질 것이다.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 조건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도 지난 25년 간 실패했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한반도 정세의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이루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대북 제재와 압박을 결코 늦춰선 안 된다. 정 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 면담 뒤 “대한민국, 미국, 그리고 우방국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북한이 그들의 언사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줄 때까지 압박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단합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적절했다.

그런데 문 정권 태도를 보면 걱정스럽다. 청와대는 8일 방북 특사단 뒷얘기를 전하면서 “문 대통령의 축적된 노력, 김 위원장의 숙성된 고민이 합쳐져 6개 항 발표문이 나왔다”고 했다. 김정은 인품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놓았다. 현 상황은 ‘김정은 배려’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강력한 압박에 김정은이 굴복한 결과다. 4시간 남짓 환대받고서 장성택과 김정남을 살해하는 등 김정은의 잔학성은 잊은 듯하다.

해빙기가 더 위험하다. 녹기 시작한 얼음이 깨지면서 익사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화 국면은 북핵 해결의 마지막 기회다. 만약 실패하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정상회담에 들떠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