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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전망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안에 미·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해결의 진전 조짐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미·북 대화에 나선 의도에 대해 ‘건강한 회의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미·북 사이의 간극이 여전하고, 북핵이 완성 단계에 와 있는 만큼 북한이 협상을 파기하고 핵·미사일 시험을 재개하는 전례가 반복될 경우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북핵 위기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오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발표한 내용은 탐색적 대화를 넘어 본격적인 북·미 대화가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다만 선(先)비핵화 노선을 유지하는 미국과 대북 적대관계 해소 이후 결과로서 비핵화를 하겠다는 북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한반도 정세는 남북이 주도하는 가운데 미·북 양자회담을 진행한 뒤 이를 6자 회담 등 다자회담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북한 비핵화 과정과 더불어 북한과의 중단 없는 대화를 위해 라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군사, 체육회담, 경제교류 다변화를 서둘러서 북·미 간 원활한 대화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지난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미국과 협상으로 위기 국면을 극복하려는 단기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미국은 가장 큰 위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일단 떼어내기 위해 대화를 수용했다고 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 북핵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문제라고 했지만, ICBM 때문에 시급한 안보문제가 된 것인데, 일단 이를 제거하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미·북 대화가 자칫 ICBM만 폐기하고 북한의 핵 역량은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결론 날 위험성을 지적하며 “미·북 대화가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트럼프를 설득하는 등 ‘건강한 회의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 역시 “대북 제재로 인한 어려움, ICBM을 협상 수단으로 한 핵보유국 인정 전략, 정상국가 도약을 위한 행보 등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남을 제의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탐색적 미·북 대화는 무조건 열린다고 보면 될 것이고, 관건은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비핵화 로드맵이 무엇인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은 우리 특사단이 발표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발언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될 경우’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등 비핵화와 핵·미사일 시험 중단에 많은 전제 조건이 달려 있지만, 오늘 미국의 발표에서는 이런 내용이 다 빠져 있다”며 “한·미 간 발표 내용에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진정성이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곧바로 미국과 북한 간 특사 교환 문제가 부상할 것”이라며 “문제는 본격적인 북·미 대화 국면에 들어가면 김정은이 한·미 훈련 축소 중단, 미군 전략 자산 전개 중단,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 폐기, 미국과 수교, 평화 협정 체결에서 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북한의 입장을 계속해서 우리 정부 관계자가 미국에 전달하게 되면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북한의 대변자로 보일 수도 있다”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앞으로 이런 오해를 상쇄하는 행보도 계속 밟아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로서는 비핵화 공약이 없는 동결을 일축하지만, 다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성과에 초조한 나머지 미국까지 날아올 ICBM이라도 막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위험성을 지적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면 북한이 미·북 대화에 매우 급한 상황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 국면이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 시기를 ‘5월 안’으로 명시한 것과 관련해 김 교수는 “조지프 윤 대북정책특별 대표가 사임한 이후 미국도 진용을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4월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뒤 미·북 회담을 준비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에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위한 시간벌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김정은에게 그때까지 진정성 있는 비핵화 행동을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만으로 5월 전이라는 시점을 제시하진 않았을 테고, 북한이 미국에 공개되지 않은 어떤 ‘행동’을 제시했을 수 있다”며 “미·북 간 대화 조건을 논의하기 위한 (예비)회담이 조만간 열릴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에 간다거나 김정은이 미국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판문점에서 만날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주·유민환·김유진·장병철·박효목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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