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한민 지음 / 부키

한 사회의 문화가 어떻게 구성원들의 심리적 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어떻게 사회 현상으로 드러나는가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다른 얘기에 앞서 먼저 모두 궁금해할 게 분명한 책 제목 얘기부터. 책 제목은 미국 경제 공황기에 탄생한 영웅 슈퍼맨을 다룬 대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저자는 슈퍼맨의 탄생에서 대공황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의 욕망을 읽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활약에서 냉전체제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뒤 초강대국 미국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국경과 분야를 넘나들면서 문화 현상을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고정관념과 도식으로 다른 문화를 오해하거나 다른 문화권의 가치가 충돌하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사례를 통해 문화적 보편성과 문화상대주의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며 둘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이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소개하고 저자가 추론과 논증을 거쳐 당시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던 가치와 심리상태 등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책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세계 각국의 역사 속에서 사회 현상과 문화의 연결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고, 뒷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해석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가 줄곧 강조하는 건 ‘한국적인 시선’이다. 문화를 사회 현상에 접근하는 틀로 이해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의 시선을 통해 현상을 해독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책에는 한국적 사회문화 현상이 두루 등장한다.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 등으로 본인의 수저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보자. 사람들이 스스로 ‘흙수저’라고 부르는 현상을 두고 저자는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원망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림으로써’ 만들어졌다고 해독한다. 부정적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잃어버린 통제력을 되찾고자 하는 처절한 멘털 유지법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경기의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운동선수들이 시합날 속옷 색깔 등의 징크스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책에는 수저 계급론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 세월호 사고,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논란부터 주부의 명절 스트레스, 강남역 살인사건과 여성혐오 논쟁 등 한국적 사회·문화현상 등이 두루 분석돼 있다. 심지어 나라별 드라마 시리즈의 편 수와 회당 방영 시간을 비교하면서 한국인의 몰입에 대한 재능을 말하기도 하고, 이른바 ‘갑질’의 문제를 다루면서 갈등해결 방식에서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약자는 지배하고 강자에게는 양보하는 해결방식을 택하는 비율이 높은 한국적 상황과 구성원들의 심리상태를 배경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