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임 ‘결단’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한은의 독립성을 제대로 보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비록 한은 총재직에 국한할지는 모르지만 문 정부 들어서도 횡행하는 ‘낙하산 인사’ 유혹을 떨쳐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글로벌 경제격변기에 통화정책의 연속성으로 시장에 신뢰를 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통화정책 수장인 이 총재의 책무(責務)는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다. 통화정책 결정 때 고려해야 할 국내외 경제 현안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판단했다간 국가 경제 존망을 가를 정도의 중대사들이다. 한·미 금리 역전은 발등의 불이다. 세계가 본격적인 ‘긴축의 시대’로 들어선 만큼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나 경기 급랭도 경계해야 한다. 급격한 자본 유출도 걱정해야 하니 금리 인상 시점을 놓고 고민이 많을 게다. ‘1450조 원 가계부채’는 한은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난제 중 난제다. 글로벌 무역대전과 국내 대기업의 구조조정 지체도 골칫거리일 것이다.

청와대는 이 총재를 ‘명실상부한 최고의 통화정책 전문가’라 했다. 이 총재는 이 극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논리에 반하는 경제정책에 대해 하시라도 쓴소리하는 결기는 기본이다. 정부 눈치 보며 직에 연연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정부와 건건이 대립각을 세워서도 안 된다. 오직 정권 아닌 국민만 바라보는, 냉철하고 정교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 시장 소통과 조직혁신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래야 ‘말 잘 들어 연임됐다’는 일각의 악평까지 씻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