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수업 혁신’

국내 최고 ‘지성(知性)’이라고 하는 서울대에는 교재와 필기, 시험이 없는 이른바 ‘3無 수업’이 있다. 지난해 박남규 경영학과 교수가 진행했던 ‘창조와 혁신’ 강의는 교재와 교수 ‘강의’ 대신 학생들의 프로젝트 형식 수업으로 이뤄졌다. 이 수업에는 ‘퍼즐링 기법’이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가령, 카페에서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는 과정을 가능한 한 쪼갤 수 있는 단위로 쪼개 분석을 한 뒤 각각의 과정에서 예상되거나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이나 개선방안을 학생들 스스로 찾아내는 식이다.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 내용을 만들어 가면서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수업의 장점이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방식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진 교수들이 모여 지난해 설립한 ‘한국창의성학회’ 공동 회장인 박 교수의 이 같은 창의적 강의들이 서울대 내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한국창의성학회는 당초 서울대 교수 10여 명이 학문 중심 교육의 프레임을 넘어서 사고 혁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교육 혁신에 뜻을 같이하는 다른 대학 교수들과 기업들이 동참하면서 활동이 더욱 활발해 지고 있다. 창의 교육 수업을 적용하고 있는 교수들의 경험들을 모아 조만간 책도 출판할 계획이다.

박 교수와 창의성학회 공동 회장인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수업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2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론을 먼저 알려주는 ‘연역적’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사례 중심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모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수업을 바꿨다”고 소개했다. 선행학습 후 토론식 강의 등을 진행하는 일종의 ‘거꾸로 수업’의 한 방식이다. 세계적으로 활용도가 커지고 있는 ‘플립러닝(flipped-learning)’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 교수는 “논리적 추론을 미리 하는 것은 창의적 사고를 갇히게 할 수 있다”며 “사례를 먼저 던져줘 학생들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하는 등 교수보다는 학습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신 교수 역시 시험문제를 단순한 지식 암기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통합적 사례를 내고 학생의 관점에서 사례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낸다. 신 교수는 “재미없고 딱딱한 이론 수업보다 살아있는 지식으로서의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보는 틀을 갖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성학회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의 수업방식도 색다르다. 신 교수는 “황 교수가 문제를 내주면 그의 학생들은 스스로 책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특히, 예습을 하지 못하게 해 학생들을 문제 상황에 던져 놓고 스스로 문제에 대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예습이나 사전 논의 없이 문제를 접하게 한 뒤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도록 할 경우 나중에 설명해주는 공식이나 모델에 대한 이해력도 그만큼 빠르고, 학생의 창의력도 키울 수 있다.

신 교수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업방식을 바꿔야 하고, 결국 강의실(교실)이 바뀌어야 한다”며 “수업 혁신을 통해 새로운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실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이런 확신이 쌓이면 평가 방식도 자연히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