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군 기무사령부 예하 9535부대원들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와 함께 지역의 불우아동 후원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9535부대 제공

국군 기무사령부 9535부대

97년부터 소년소녀가장 후원
부대원들 2000만원 넘게 기부
해마다 홀트학교 찾아 봉사도

부대 전입하면 아동후원 동참
“아름다운 전통 계속 이어야죠”

‘군인과 어린이.’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문편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안다. 기자가 아는 한 지인은 위문편지를 보냈던 여고생과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 ‘위문편지’에는 ‘군인과 어린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국민학교’가 있던 시절, ‘자랑스러운 군인 아저씨’로 시작하는 위문편지 한 통 안 써 본 어린이는 없었을 것이다. ‘사제 편지’ 올 곳이 변변치 않았던 장병이었다면 어느 날 자신의 관물대 위에 놓여 있던 아이들의 위문편지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잘 알 것이다. 힘든 훈련과 고된 업무를 마치고 내무반에 돌아왔을 때 서툰 글씨체로 “국군 장병 아저씨가 자랑스럽다”고 적은 아이들의 편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곤 했다.

순수한 아이들로부터 받기만 했던 ‘사랑’에 20년간 보답을 해 오고 있는 부대가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에 자리하고 있는 ‘국군 기무사령부 예하 9535부대’가 그 주인공이다. 연말연시 인근 지역 불우이웃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부대들은 많지만, 이렇게 20년 넘게 꾸준히 어린이 사랑을 실천해 오는 부대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보안과 방첩 분야를 지원하는 부대 성격상 군에서도 외부 노출이 엄격히 제한돼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사랑 실천’에는 부대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9535부대가 처음 어린이 돕기에 나선 것은 지난 1997년 6월이다. 지금은 준장으로 예편한 당시 부대장이었던 황석중 중령이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군도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인근 지역 소년 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을 돕는 일을 시작한 것이 첫걸음이었다. 이후 부대는 간부급 부대원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아 매월 10만 원씩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9535부대가 지금까지 이렇게 기부한 금액은 모두 2233만 원에 달한다. 기부활동에 참여한 부대원도 150여 명에 이른다.

이 부대 임명환(34) 중사도 부대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했다. 임 중사는 지난 2014년 이 부대로 전입 왔다. 임 중사 역시 이 부대 전입 전부터 불우 아동 후원을 해 오고 있었다.

“2007년 부사관 임관 때부터 후원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대학 시절,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보육원 교육 봉사 활동을 했던 게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도 해외 아동 돕기 기부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이 부대에 와서 아동 돕기 전통이 있는 걸 알게 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죠. 작은 것이라도 불우한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죠.”

이 부대 임태효(46) 준위도 부대의 후원 활동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개인적으로 또 다른 아동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보면 불우 아동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게 임 준위의 말이다. 이승복(37) 중사 역시 아동 후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부대원이다. 이 중사는 “후원 결심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고 아내와 얘기했었다”며 후원 배경을 설명했다.

부대원들은 특히, 2009년 일산동구 식사동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초등학생 소년가장을 잊지 못한다. 어렵게 살던 이 소년은 당시 수해가 나 집이 물에 잠겨 매우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부대원들이 직접 나서 장판도 교체해 주고 연탄도 채워주고, 집도 수리해 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 소년은 나중에 성인이 돼 부대에 감사인사를 오기도 했다고 한다.

9535부대원들은 기부활동과 함께 매년 지역 인근의 장애아동 학교인 홀트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목욕이나 청소 등 생활봉사는 물론, 각종 시설 보수 작업도 직접 해 주고 있다.

부대장인 정도섭 중령은 “부대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려는 노력과, 적지만 이웃을 돕겠다는 부대원 개개인의 마음이 20년의 전통을 이어온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9535부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함께하는 우리, 행복한 어린이 '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