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재무상태 급속 악화”
채권 매매·주문도 모두 중단

北미사일 관련 돈세탁 의혹
ABLV측 “중상모략에 희생”

유럽중앙은행(ECB)이 19일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위한 돈세탁 작업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라트비아의 은행 ABLV에 지급정지 명령을 내렸다. ABLV가 제2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 재무부의 대북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정권의 달러 자금줄도 곳곳에서 막히거나 끊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ECB는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며칠 새 ABLV의 재무 상태가 급속하게 나빠졌다”면서 “다음 공지가 있을 때까지 ABLV의 모든 지급은 중단된다”고 발표했다. ECB의 지급정지 명령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ABLV의 채권 거래가 이뤄지는 나스닥 리가 증권거래소도 ABLV의 채권 매매를 중단하고 모든 주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지급정지 조치가 장기화하면 은행 파산의 가능성도 있으며 나아가 ECB가 은행 업무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ABLV는 라트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이다.

ABLV의 위기는 지난 13일 미국 재무부가 ABLV를 북한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 금융망에서 전격 퇴출시키면서 촉발됐다. 미국 금융범죄단속반은 “ABLV의 불법적 금융 활동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정한 제재 대상자들과의 거래가 포함돼 있다”며 “그중 일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조달 혹은 수출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 금융망에서의 퇴출은 사실상 국제 금융거래의 중지를 의미한다.

실제로 미 재무부 조치 이후 돈줄이 막히자 상당수 고객이 ABLV와의 거래를 끊으며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일어났다. ABLV에 따르면 미 재무부의 미 금융망 퇴출 발표 이후 ABLV에서 빠져나간 액수는 6억 유로(약 8000억 원)에 달한다. 재무 사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ECB가 향후 금융시스템에 미칠 더 큰 파장을 고려해 사전에 지급 정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ABLV는 혐의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ABLV의 회장이자 공동 소유주인 에르네스트 베르니스는 “우린 중상모략의 희생자”라며 “경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마르스 림세빅스 라트비아 중앙은행 총재는 라트비아 반부패 척결기구인 KNAB에 체포돼 조사받은 뒤 보석금을 내고 이날 풀려났다고 영국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그의 구체적 혐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그가 북한과의 금융 거래 등을 숨기기 위해 라트비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넸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