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에스타워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노사정위 개편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3부. 경직된 노동, 주입식 교육을 넘어서 - ② 제자리 못찾는 勞使政 대화

勞使, 상호신뢰 쌓는 게 우선
근로시간 단축 등 놓고‘팽팽’

양대노총소속, 전체의 10%뿐
中企 등 소외…참여 확대해야

ICT 등 4차 산업 필수전제인
‘노동유연성’사회적 타협 절실
진영논리 배제하고 대화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절실한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노사정 대타협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업종은 과거 전통적인 제조업과는 달리 업무 장소와 시간, 고용 형태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밖에 없고 이에 걸맞은 노동유연성 확보가 필수 전제조건인데 갈등 해결이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도출에 성공한 사례가 단 한 번에 그쳤을 정도다.1999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에 반대하며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반쪽’ 기구로 전락한 노사정위는 8일 현재에도 미래 운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양보를 통한 노사정대타협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는 배경이다.

◇제자리 못 찾는 노사정 대화 =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부터 사회적 대화 재개에 공을 들여왔다. 정부는 대화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노동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정책을 펴왔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올해 최저임금을 역대 최고 수준(16.4%)으로 인상했다. 또한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고용노동부 수장에 노동계 출신 인사를 임명하는 한편, 성과연봉제와 양대 지침(‘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까지 원점으로 돌렸다.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현안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 내려면 노사정위에 양대 노총을 끌어들여 어떻게 해서든 사회적 대화 프로세스를 가동시키는 게 급선무라 판단한 때문이다. 아울러 노사정위를 불신하는 노동계를 의식해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제안하며 기존 노사정위를 폐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에스타워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8년 2개월 만에 양대 노총이 모두 참석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열리며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는 각종 현안을 두고 시작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며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노동계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방안이나 최저임금 제도 개편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대표자 회의를 비롯해 사회적 대화 참여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친노동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기조에 따라 노사정 대화가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어렵게 재개된 사회적 대화 복원 움직임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달 중에 열릴 예정인 제2차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도 경영계와 노동계의 기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유연성 확보 속 안정성 도모 =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선 노동유연성, 노동계 입장에선 고용안정성이 중요하지만 한쪽으로 배가 기울면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듯이, 기업이 어렵다는 사실도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노사가 서로 간의 입장을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사정대타협을 위해선 노동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을 함께 담보한다는 큰 원칙을 가지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노사 어느 일방에 경도됐다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노사정대타협의 출발”이라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 대화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노동계 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영역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입법부와 사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진영 논리에 빠지는 일 없이 사회적 대화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경계론도 = 전문가들은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신뢰부터 쌓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계에선 과거 정부가 노동 정책을 밀어붙일 때 노사정위를 들러리로 이용했다는 의식이 강해 노사정위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라며 “어렵게 대화가 재개된 만큼 경영계와 노동계가 제대로 소통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 협의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친노동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노사정 대화는 노사 간의 진정한 합의보다 노 측으로 기울어진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지기 쉬운 상황”이라며 “권노유착이란 평가를 받지 않도록 서로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각자 원칙을 확실하게 밝히며 논의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노사정위 참여 주체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참여 주체를 지금보다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강식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양대 노총 소속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10% 수준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이 대화 주체에서 소외된 상황에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대화에 직접 관여하는 대신 대화의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에 머물러 논의가 한쪽 방향으로 왜곡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