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30대 중반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해 사극과 근대물, 현대물 등에 고루 출연해온 류승룡은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리냐”는 질문에 “내가 어깨가 좁고 5등신이라 한복이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프레인글로벌 제공

‘염력’으로 3년만에 스크린 복귀

“혀로 물체들 움직이는 장면선
계속‘컷’안 외쳐 혀 빠지는줄
실제 車 매달아 둥둥 띄우기도

‘인성논란’계기로 돌이켜보니
너무 건방떨었구나 생각 들어
또 실수하면 채찍질해주시길”

레이저를 쏘는 듯 강렬한 눈빛이 트레이드마크인 배우 류승룡이 깊고 넓어진 연기로 돌아왔다. 2015년 ‘도리화가’ 이후 3년 만이다.

2004년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해 액션, 드라마, 코미디, 전쟁물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온 그가 이번에는 초능력자로 나섰다. 그는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에서 아내가 죽던 날 약수터에서 물을 먹은 뒤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을 얻게 된 은행 경비원 석헌 역을 맡아 코믹하면서도 절절한 연기를 펼쳤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어린 딸 루미(심은경)를 두고 집을 나갔던 석헌이 유명한 치킨집 사장이 된 루미의 가게가 지역 일대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초능력을 발휘해 딸을 돕는 이야기를 그렸다. 독특한 소재에 유머를 담아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특정 사건이 떠오르는 내용을 통해 공권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도 녹여낸 블랙코미디다.

류승룡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목소리 연기를 하며 인연을 맺은 연 감독에 대한 신뢰와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악에 맞서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감독님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신선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어요. 미국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와 달리 현실에 맞닿아 있는 초능력자가 웃음을 선사하며 희망을 전하는 이야기가 좋았고요. 처음에는 초능력이 생긴 걸 즐거워하며 그 능력을 생계를 위해 쓰려고 하다가 루미를 만난 후 딸을 보호하고, 구하려고 온몸을 던져 초능력을 이용하는 책임감 있는 아빠의 모습에 공감하며 연기했어요. 석헌과 대척점에 서는 ‘악’이 어떻게 설정될지 궁금했는데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악으로 정해진 후 ‘참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석헌이 염력을 발휘할 때 온몸을 쥐어짜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혀로 물체를 움직이고, 무릎을 돌려가며 힘을 짜내는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감독님이 시범을 보일 때마다 배우들과 스태프 다 쓰러졌어요. 혀를 쓰는 장면을 찍으며 감독님이 하도 ‘컷’을 안 외쳐서 혀가 빠지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 카메라 뒤에서 웃다가 넘어져 있더라고요(웃음). 염력 장면들에 컴퓨터그래픽(CG)을 많이 사용했지만 대부분 실제로 사람과 물건을 줄에 매달아 띄우며 찍었어요. 자동차도 찌그러뜨리고, 냉장고도 둥둥 띄웠으니까요. 그런 아날로그 효과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에게 “이제 센 캐릭터보다는 편안한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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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어요. 근데 지금은 제 연기의 깊이와 넓이를 신경 쓰게 돼요. 지금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지만 데뷔 초와는 결이 조금 달라요. 옛날에는 돋보이고 싶어서 용광로처럼 뿜어냈는데 지금은 배우려는 욕심이 더 커요.”

연기만큼 그의 생각도 깊어졌다. 2014년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동료 배우들이 “(류승룡이)워낙 떠서 연락이 잘 안 된다”고 말한 후 그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별다른 해명 없이 마음고생을 이어왔다. 그러던 그가 이날 인터뷰에서는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를 총체적으로 돌아봤어요. ‘너무 건방 떨었구나’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많이 아팠지만 제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늦게 영화를 시작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경직돼 있었어요. 갑자기 많은 사람과 접하며 혼란도 컸고요. 그러다 사람들이 실망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제 부족한 부분을 감추려고 했어요. 저를 보호하려 한 거죠. 그 일을 계기로 주위 사람들과 더 돈독해졌어요. 제가 또 그런 실수를 하게 되면 주위에서 채찍질해주시길 바라요. 요즘은 전화 잘 받아요. 보이스피싱 전화도 받을 정도니까요(웃음).”

그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냐”고 되묻자 그는 “시대를 담아내고, 세월을 그려내는 배우”라고 답했다.

“관객의 마음을 읽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품어온 배우의 꿈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사람이 먼저 되고, 향기를 은은하게 뿜어내는 그런 배우가 될 거예요. 그렇게 되고 싶어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