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청춘이여 영원하라 호탕하게 웃음 짓던 그날이여, 다시 올 수 있다면 내 너를 진정 사랑하리라.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1992년 마스터스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 12번 홀. 파 3으로 155야드에 불과한 이 홀에서 프레드 커플스가 티샷한 공이 둔덕을 맞고 굴러 내려갔다. 개울에 빠질 것이란 갤러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적’처럼 멈췄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커플스는 두 번째 샷을 핀에 붙였고 파로 마무리하며 ‘아멘코너’를 무사히 넘겨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커플스가 남몰래 후원했던 소년이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소년의 집에서 전화가 왔다. 소년이 숨져 마음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이 커플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12번 홀에서 기적적으로 볼이 멈춘 것은 “커플스의 도움을 받은 소년의 마지막 선물”로 표현됐다. 조용하게 소년을 후원한 커플스의 진정성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커플스는 지금까지 미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골퍼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92년 이후 이곳 12번 홀은 ‘골든벨’로 불리고 있다.

사실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의 12번 홀은 18개 홀 중 가장 짧다. 수치상으로는 쉽게 공략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홀은 많은 스타 골퍼에게 탄식과 좌절을 안겼다. 2011년 마스터스에서 로리 매킬로이는 12번 홀에서 4퍼트, 더블보기로 우승에서 멀어졌고 2013년 버바 왓슨은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물에 3번이나 볼을 빠트리며 10타를 남발했다. 역대 마스터스 최다 타수 역시 이 홀에서 나왔고, 13타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미국 골프사를 살펴보면 기록이나 기량에서 커플스를 능가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많다. 그러나 커플스는 미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선수로 꼽힌다. 그가 큰 사랑을 받는 것은 일관되고 변함없는 진정성 때문이다.

사실 ‘비즈니스골프’는 쉽게 잊히고 또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예의나 격식이 우선이고 상황에 맞춰 플레이해야 하기에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이란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이라고 정의돼 있다. 정이나 마음은 ‘감정의 교류’다. 커플스는 진정 그 소년과 감정을 교류했고, 모든 미국인은 이들의 진정성과 감정 교류에 감동했다.

A 프로골퍼는 국내서 사랑받는 톱 선수다. 특히 자선행사를 많이 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성의 결여다. 커플스가 연출한 골든벨 스토리는 좋은 교훈을 준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