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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 만들기 / 웬디 무어 지음, 이진옥 옮김 / 글항아리

‘완벽한 아내 만들기(원제 How To Create the Perfect Wife)’라니. 오류투성이의 불가능한 일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아내란 존재할 수 없고 아내를 만든다는 생각 또한 가당찮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시도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스스로 철학자라 자부한 시인이고 작가이며 반노예 인권 운동가였던 사람, 토머스 데이(1748~1789)이다. 200여 년 전, 이성에 눈을 뜨며 인간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 들떴던 계몽주의 시대, 형편없던 여성의 지위와 잘못된 신념이 뒤얽혀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돈 많은 옥스퍼드대 학생이지만 곰보 자국에 지금이라면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릴 옷차림, 게다가 철학 같은 주제라면 남 신경 쓰지 않고 끝없이 말을 늘어놓다 여성에게 거듭 차이자 토머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편견과 상상의 결과물이므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여성은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다.” “나와 대화할 정도의 지식을 지녔지만 나에게 순종하는 여성은 현실에 없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이 완벽한 아내 만들기. 즉 예쁘고 똑똑하면서도, 검소하고 순종적인 소녀를 데려와 자신이 직접 ‘완벽한 아내로 키워 결혼하는 것’이다.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고아원에서 열두 살과 열한 살 소녀를 데려와 각각 사브리나 시드니와 루크레티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교육에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가당찮은 실험은 200여 년 전에도 실패로 끝난다. 데이는 일단 자신의 기준에 모자란 루크레티아를 내보내고 사브리나에게 집중하지만 우여곡절을 겪다 마지막 순간 사브리나가 데이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관계는 끝이 난다. 그는 사브리나에게 고통을 참는 교육을 하겠다며 몸에 촛농을 떨어뜨리고, 그녀를 저수지에 던지기도 했으며 폭우가 쏟아지는 날 풀밭에 누워 있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영국 저널리스트 웬디 무어가 사브리나의 고아원 기록까지 뒤져가며 재현해낸 토머스 데이 이야기는 자신이 창조주인 양 여성을 자기 멋대로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여성에 대한 공포스러운 폭력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의 이 필생 프로젝트에 주변의 소위 엘리트 지식인 친구들도 가세했으니, 한 남성의 기이한 돌출 행동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은 자신이 만든 석고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으로 거슬러 올라가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거쳐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마이페어 레이디’로 이어지며 때로는 교육으로 때론 사랑과 남성적 로망의 이름으로 등장했으니 그 시대 일만은 아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도 이 계열에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러 자료를 모아 사브리나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삶 전체를 가능한 한 맞춰 놓음으로써 공식 역사에선 사라진 18세기 여성의 삶을 복원한 것도 책의 중요한 가치다.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거쳐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여성을 넘어 약자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 특히 지식과 권력을 지닌 자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장 자크 루소 등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 있고 우리가 역사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당대의 연애와 결혼 풍경도 자세하다.

여기에 더해 소설처럼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472쪽, 2만1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