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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직전 정부 청와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파문에 뒤이은 법관(法官) 블랙리스트 파동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공정한 재판을 본질로 하는 법원이, 외부의 비판이 있을 때마다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지 말라고 항변하던 법원이, 법관의 성향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은밀하게 진행했다는 점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블랙리스트란 무엇이고, 법관 블랙리스트의 위험성은 무엇인가? 이번 법관 블랙리스트 파동을 통해 법원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블랙리스트란 위험인물 내지 요주의 인물의 명단이다. 전과자나 테러 용의자처럼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임이 분명하고, 감시의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블랙리스트가 문제되지 않는다. 반면에 법적 근거 없이 개인 정보나 사생활에 대해 침해하는 ‘사찰’ 대상 명단을 비밀리에 작성한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법관 블랙리스트는 왜 논란이 되고 있으며,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관 블랙리스트는 법관들에 대한 부당한 압력의 예후(豫候) 또는 증거일 수 있다. 특정한 성향의 법관들에 대해 별도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해 감시하고, 인사상의 불이익 등 압력을 가하는 것은 분명히 사법부(司法府)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독립’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관들이 특정한 성향을 갖는 것이, 그런 법관들이 모임을 만들어 특정 성향의 판결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가? 순수한 연구 모임에서 다양한 성향의 법관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이라면 모르되, 특정한 성향의 법관들이 모여서 정치적 편향성을 갖게 된다면 이는 사법의 정치적 중립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성향의 법관들에 대한 동향 파악이나 대응책 논의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법관 블랙리스트 문제는 특정한 성향의 법관들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이나 불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한 것인지에 따라서 달리 평가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추가 조사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 전에 법관 블랙리스트 파동을 통해 법원이 얻은 것과 잃은 것부터 알아보자.

법원 수뇌부라 하더라도 법관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판결의 경향 등을 분석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일은 향후 쉽지 않게 되었다는 점, 법원의 외부 압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법관들의 법원 내부에서의 독립이 중요함을 국민이 깊이 인식하게 됐다는 점은 이 사건을 통해 얻은 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에 잃은 것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블랙리스트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크게 실추됐다는 점, 그로 인해 사법평의회와 같은 법원 외부기관에 의한 통제가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법원 조직의 안정과 법관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쫓기보다는 하나씩 잡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원 조직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내부 인사 문제 등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법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와 더불어 법원 내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