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왼쪽)와 고려대 고파스에 최근 가상화폐 게시판이 등장했다. 연합뉴스

“부모님 주신 등록금 다 투자”
전용 게시판 열고 경험 공유

“벌써 한탕주의 물들까 우려”

“하루종일 머릿속에 부동산, 코인, 자본뿐이라 업무에 집중이 안 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자본이 증식하는 속도가 노동으로 자본을 얻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확신이 들다 보니 무기력하고 우울해집니다. 무엇보다 즐거운 책 한 권 읽을 정도의 집중력도 안 생기네요.”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만 실명 인증 후 가입할 수 있는 서울대생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최근 올라온 게시글이다. 스누라이프에 지난 11일 재테크 게시판이 만들어지자, 200여 건 이상의 가상화폐 관련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가상화폐 가격이 뚝 떨어진 16일을 기점으로는 “이미 원금은 반 토막 났고 그 이하로 하강 중인데, 돈은 아니라서 존버(끝까지 버티기)한다. 모두 힘을 내자”거나 “4일 사이에 2억이 빠지는 걸 경험하고 너무 무서워서 몇 코인은 처분했는데 몇 개는 너무 안타까워서 떠날 수가 없다” “2500만 원 넣었고 2주일 만에 절반 날아갔다. 중요한 건 돈뿐만 아니라 정신도 피폐해졌다는 것” 등의 게시글이 잇따랐다. 재테크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부동산, 주식채권파생, 암호화폐, 일반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대다수가 암호화폐로 분류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학내 혹은 사회 이슈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거나 대학 생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돼 온 커뮤니티가 가상화폐에 점령됐다.

고려대생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고파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파스는 지난 10일 ‘주식·재테크 게시판’을 ‘코인·주식 게시판’으로 개편했지만, 가상화폐 관련 글이 집중적으로 올라오자 16일 아예 ‘코인 게시판’을 신설했다. 이 게시판에도 정부의 규제 강화 방침 이후 돈을 잃은 이들의 사연이 잇따랐다. “1억4000여 만 원을 투자했다가 7000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결혼 못 할 듯” 같은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 다 박았다. 휴학까지 하려 했는데… 공부 열심히 해서 정직하게 돈 벌자”는 내용의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17일 오전 현재 코인 게시판에는 200여 개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연세대 인터넷 커뮤니티 ‘세연넷’의 경우 별도의 가상화폐 게시판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정부 때문에 (가상화폐) 떨어진 것 맞는 듯’ 등 가상화폐 관련 게시글이 다수 게재된 상태다. 서강대 커뮤니티 ‘서담’에도 ‘코인 때문에 친구들 싸움’이 인기글로 꼽히는 등 ‘주식·투자 게시판’ 대부분이 가상화폐 관련 글로 메워졌다.

이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가 일주일 만에 큰돈을 벌었다더라”는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되면 나도 쉽게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질 수 있다”며 “거품뿐인 성공 신화에 빠져 노동 의욕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