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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장

“남성들에게 유혹할 자유가 허락돼야 한다.” 프랑스 여성 100명이 이런 주제의 글을 언론에 발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앞장섰다고 한다. 드뇌브 등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성폭력 추방 운동, 즉 ‘미투(Me Too)’ 캠페인의 지나친 공격성을 우려했다. ‘전체주의의 기운’이라는 말로 인민재판 분위기를 경계했다.

드뇌브의 주장을 뉴스로 접했을 때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블랙 쇼크’ 탓이었다. 미투 캠페인에 동조한다는 뜻으로 영화관계자들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나왔다. 그걸 보는 순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자유로워야 할 예술인들이 하나의 신념에 절대적으로 동조한다는 것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드뇌브의 주장은 미국 문인 메릴린 옐롬이 쓴 책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옐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은 자유롭고 관능적인 사랑을 옹호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남성들은 소년 시절부터 여성의 귀에 달콤한 말을 흘리는 갤런트리(gallantry)에 익숙하다. 여성들은 나이 들어도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매력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전통에 바탕을 둔 드뇌브의 발언은, 그러나 프랑스 내부의 여성주의 지식인들로부터 난타를 당했다. 드뇌브는 빗발치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사과한다”며 물러서면서도 미투의 과열을 여전히 경계했다. 이번 논란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여성주의를 모둠살이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시각차 탓이다.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 논쟁이 오랫동안 진행돼왔다. 한국에서는 그 기간이 대단히 짧다. 논쟁 자체가 미성숙한 상황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추방 운동에 대해 많은 남성이 당혹감을 표현한다. “배우 공유가 외모를 언급하면 칭찬이고, 내가 하면 성추행이냐”는 우스개에는 항심(抗心)이 스며 있다. 직장의 남성 간부들은 “여성 직원들과 접촉을 줄이는 게 상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하지만, 내색을 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들, 특히 젊은이들은 남성들의 당혹감 자체가 우월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언동이 줄었다고는 하나, 힘과 돈을 앞세운 성폭력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다며 사례를 쉽게 댄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처럼 ‘젠더 이퀄리즘(양성 평등)’을 지향할 단계까지 가기에는 멀었다는 것. 여성주의는 ‘쎈 언니들’이 이끈다는 편견이 남아 있는 수준이다. 후배 여기자가 관훈클럽 잡지에 쓴 글을 보니, 취재 현장에서 만난 남성들이 섹드립(성적 농담)을 내뱉으며 자신이 쿨한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여전히 잦다고 한다.

드뇌브의 주장을 반가워했던 남성으로서는 혼란스럽다. 혼란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이 시대 남성들이 여성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새롭게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한 기업체 간부인 친구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의 말은 평범했으나 울림이 있었다. “아빠 되는 법, 남편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듯이 상사로서 이성 후배들을 대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jeij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