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지난 8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고위급 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15일에는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회담이 이어지면서 매스컴의 관심은 평창동계올림픽의 내용보다는 비핵화 문제와 이산가족 그리고 군사회담 등의 향방에 집중되고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평창올림픽을 성공시켜 평화올림픽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를 대신해 개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올림픽은 스포츠 경기이면서 축제다. 고대올림픽은 종교적 목적에 충실한 축제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전쟁 중이더라도 올림픽 기간만은 휴전하고 올림픽을 즐겼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천 년을 이어 왔다. 근대올림픽의 주창자인 쿠베르탱도 올림픽을 정치와 인종, 종교의 벽을 초월하려는 이념을 추구했다. 그는 프랑스와 유럽만의 스포츠 대회가 아니라, 종교 차원에서 전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근대올림픽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세 번이나 열리지 못했고, 정치적인 다툼으로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지난 제72차 유엔총회에서 다수의 유엔 회원국 지지 속에 평창올림픽 휴전결의안이 표결 없이 채택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제 근대올림픽은 좀 더 종교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동계와 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창올림픽은 축제가 돼야 한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전 세계인을 맞아 즐겁게 뛰노는 평화의 축제가 돼야 한다. 스키나 스케이트를 타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 비료 포대를 타고 눈 쌓인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거나, 꽁꽁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고 즐겁게 놀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썰매는 눈 위에서 타는 말이라는 의미의 ‘설마(雪馬)’에서 유래됐는데, 축제는 바로 이런 눈 위에서 말을 타는 것과 같은 짜릿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남북 팀이 공동 입장은 했지만 그동안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은 없었다. 1991년 처음으로 남북 탁구선수로 단일팀을 구성해 남북선수단의 명칭은 영어로 ‘KOREA’, 국문은 ‘코리아’로 정했고, 단기는 한반도기를, 국가는 ‘아리랑’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평창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와 피겨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분명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올림픽 출전을 위해 땀 흘려 온 우리 여자 하키 선수들이 희생되는 경우 어찌해야 할지, 이미 만들어 놓은 단복은 어떻게 해야 할지, 선수단과 응원단의 이동 경로와 경비는 어쩔 것인지 등 현실적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는 IOC를 비롯한 국제빙상경기연맹 등 국내외 실무 회담자들에게 맡겨 놓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좋은 정치란 일반 국민이 모르게 하는 무위(無爲)로 정치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고, 전쟁의 귀재인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싸움의 극치는 형세가 아예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번 남북 단일팀 회담에서 북한의 한·미 동맹 이간질이나 선전·선동전에 휘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가능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무위의 정치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만큼은 평창과 강릉, 정선에 직접 가서 정치를 초월한 인류 최고의 축제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