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 저물어 가는 올 한 해 책 시장에서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입니다. 이 트렌드의 상징적 출발이라면 2014년에 나와 2015년, 2016년을 휩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사회적으로 ‘나쁜 것’으로 규정된 ‘미움’, 게다가 ‘미움받는 것’에 대한 긍정이었습니다. 남 신경 쓰지 말고 자기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흐름은 좀 더 분명해져 올해 들어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 조준호의 ‘잘 넘어지는 연습’, 요즘 베스트셀러 톱 순위에 오른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힘들이지 말고, 애쓰지 말고, 신경 쓰지 말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진리로 맹신했던 것들, 목표로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의심입니다. 아마도 많은 이가 그렇게 믿고 살았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빈손이거나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이번 주에 나온 프랑스 철학자 샤를 페팽의 ‘실패의 미덕’(마리서사·사진)도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입니다. 저자는 실패가 우리 일상인데 실패에 대한 철학 책이 없음에 의문을 표합니다. 왜 실패에서 얻은 지혜에 대한 플라톤의 대화, 실패의 미덕에 관한 데카르트의 담론, 실패에 대한 헤겔의 변증법 개론은 없냐며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학파, 헤겔의 변증법,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와 바슐라르의 성찰, 레너드 코언의 노래까지 오가며 실패의 미덕을 살핍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또 자유롭기에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해야 진짜 인간이 무엇인지 깨닫는다고 합니다. 오류를 통해 깨닫고, 실패에서 겸손을 배우며 실패에서 의외의 기쁨과 재창조의 기회를 얻는다고, 그래서 실패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에디슨, 스티브 잡스,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도 숱한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실패의 미덕이 뭘까 궁금해 펼쳤는데 실패에서 배워 성공하라는 전개에 불편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철학책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 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전제한 실패에 대한 찬양이라 해도 우리가 이제까지 부정적이라며 돌아보지 않았던 것에 가치를 새로 부여하는 이 모든 시도는 삶의 좌표를 재설정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보편적인 룰을 다시 만들어 보려는 시도이며, 기존의 틀로는 해석되지 않는 자기 삶을 이해해 그 방향을 잡아가려는, 애처롭지만 적극적인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도들은 중심과 주변, 미움과 사랑, 성공과 실패에 모두 열려 있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역시 실패를 통해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가겠지요.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