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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이달 초 10여 년 만에 다시 온 베이징(北京)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시내 중심가 왕푸징(王府井)에는 고가 브랜드 상품이 넘쳐나는 대형 상점들이 즐비했다. 백화점 한 식당에서 음식 주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계산대 옆에 놓여 있는 판 위의 QR 코드를 찍어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로 지불했다. 길가에서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려고 했더니 뒷자리에 앉은 손님 역시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콰이디(快 )’로 불리는 삼륜 오토바이 모양의 택배 차량이 인터넷 주문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10m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최첨단으로 무장한 도시 같지만 여기저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도 있었다. 조그만 건물 화장실은 불결하고 냄새가 많이 났다. 모든 식당에 실내 ‘흡연 금지’라고 붙여 놨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인이 많았다. 왕징(望京) 지역의 지하철역 사거리 횡단보도는 신호등 고장인지 차와 사람이 수시로 뒤엉키는 무법천지였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했지만 준법의식이나 도덕성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사회가 발전할수록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베이징의 더 큰 음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베이징시 당국의 농민공(農民工·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층민 노동자) 밀집구역 강제철거 작업이 그것이다. 지난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때 베이징 외곽 허름한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시진핑 주석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며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를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같은 달 18일 남부 외곽 다싱(大興)구에서 발생한 불법 임대아파트 화재로 19명의 농민공이 사망하면서 사태가 촉발됐다. 시 당국이 화재 예방 등을 이유로 135곳의 농민공 집단거주구역 강제 철거에 나선 것이다. 이른바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 정리 작업’이었다. 택배 기사, 가정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공들에게 며칠 내로 퇴거하라고 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강제철거에 불응하는 농민공에게는 단전과 단수 조치까지 취했다. SNS를 통해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이 커졌다. 일부 지식인의 비판 성명이 이어졌고, 급기야 베이징대와 칭화대 학생들이 차이 서기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홍콩 언론 밍바오(明報)는 ‘신시대의 관료주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화재 예방과 도시 미관 등을 이유로 불법 거주구역을 정리할 수는 있다”면서도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지에 대한 고려가 빠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이들을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몰아낸다면 추운 겨울에 집 없이 떠돌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강행한 것은 관료주의의 산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베이징 시내에는 ‘인민은 신앙이 있고, 국가는 역량이 있고, 민족은 희망이 있다(人民有信仰 國家有力量 民族有希望)’는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들 농민공이 과연 국가에 어떤 신뢰와 믿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19차 공산당 당대회로 ‘제2기 시진핑 체제’를 맞은 중국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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