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다는 ‘4대 원칙’은 문 대통령의 방중 목적을 전면 탈색시킬 정도로 문제가 많다. 지난 10월 31일의 ‘3불(不)’ 합의에 이은 최악의 외교 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중국의 입장을 복창(復唱)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은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중국은 1990년대 북핵 위기 발생 뒤 ‘한반도 문제 3대 원칙’으로 한반도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일관되게 내세워왔다. 여기에 남북관계 개선만 추가한 셈인데, 이것 역시 중국이 늘 주장해오던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 측 발표에는 4대 원칙이 모두 시 주석의 발언으로 소개돼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북 압박이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완성이 임박한 현시점에선 김정은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 이런 원칙에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적극 동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한 핵무기가 대한민국을 제1 타깃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모든 방법을 다해 저지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시 주석에게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을 요청하고, 한국도 사드를 포함해 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어야 했다. 이런 것이 빠진 4대 합의는 공허함을 넘어 부정적 효과를 부를 뿐이다.

우선, 김정은에게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3개월 시한설과 함께 ‘군사 옵션에 앞선 마지막 단계’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한·중 공조로 미국의 실력 행사를 막아주겠다고 선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황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것은 조만간 필요할 수도 있는 ‘핵 자위권’을 스스로 포기한 행위다. 전술핵 재반입 및 자체 핵 개발 필요성이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셋째, 미국과의 입장 차이로 인한 동맹 균열 가능성도 더 커졌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훈계’하듯 했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사드 문제를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면서 “방향을 정확하게 잘 잡으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적어도 정부의 ‘사드 봉인’은 사실상 거짓임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세끼 연속 한국 수행원들과 식사를 했다. 이 지경이니 문 대통령이 중국을 왜 갔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