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北核)을 둘러싼 미국·중국·북한 간의 수읽기와 기 싸움이 막전막후(幕前幕後)에서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핵 능력 완성까지 남은 기간을 3개월로 본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 수두룩하다. 특히, 조건 없는 대화에서 무력 대응까지 극단적 강·온(强穩)을 오가는 미국 기류에선 내년 2∼3월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흐름도 짚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일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반박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북한의 근본적인 행동 개선 없이는 어떠한 대화도 없을 것”, 백악관 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북 신호가 다소 엇갈리지만, 지난 12일 틸러슨 장관의 발언엔 많은 시사점이 있다. 우선, 미국이 북핵의 완전 폐기가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고 핵 비확산 보장을 받는 수준에서 북핵 문제를 ‘동결’할 가능성이 비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북한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29일 ICBM 화성-15형 발사를 ‘핵 무력 완성’이라 선언한 뒤, 미국과 대화에 나서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에 북·미 대화를 중재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 당국자들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미국은 북한 내 핵무기 확보를 위해 미군이 휴전선을 넘더라도 반드시 한국에 복귀하겠다고 중국에 약속했으며, 중국은 대량 난민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통보했음도 공개됐다. 한국과 어느 정도 협의했는지 불분명하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게 돌아가는데도 정작 한국은 배제되고 있는 것 같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2월에 북핵 문제의 중대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문제다.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듯한 정황도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셀프 패싱’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북한 핵 문제는 북·미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데 남북 대화는 북한 핵에 가로막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북핵 해결의 당사자 자격을 사실상 포기했다. 운전석에 앉기는커녕, 달리던 차에서 하차한 셈이다. ICBM만 해결하면 직접 위협이 사라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반드시 북핵 완전 폐기를 이뤄내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룰 때까지 최강의 대북 제재를 한시도 중단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