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소요 태능 선사의 초상(왼쪽 사진)과 청매 인오 선사의 사리탑(오른쪽). 두 스님은 중생구제에 앞장섰고 수행자로서도 큰 경지를 열어 수백 편의 게송을 남겼다. 푼다리카 제공

- 학담스님 ‘소요·청매스님 선시’ 評唱한 책 2권 발간

서산대사 제자였던 소요·청매
조선중기 왜란 당시 중생구제
두 스님의 禪風 · 禪觀 되짚어

학담스님, 시대불교 과제 언급
게송 답하는 評唱頌까지 담겨
세상과 교류않는 수행 비판도

3년 전 원고지 4만5000장에 육박하는 12책 20권 분량의 대작 ‘학담 평석 아함경’(한길사)을 펴내 한국 불교 번역·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학담 스님이 이번엔 조선 중기 소요 태능(逍遙 太能·1562∼1649)과 청매 인오(靑梅 印悟·1548∼1623) 선사의 선시(禪詩) 600여 수를 평창(評唱)한 두 권의 책을 들고나왔다. ‘평창’이란 조사의 파격적인 게송에 대한 해설과 비평을 말한다. 푼다리카출판사에서 최근 펴낸 소요선사 선게집 ‘소요태능선사를 다시 노래하다’와 청매선사 문집 ‘푸른 매화로 깨달음을 도장 찍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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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휴정의 제자인 소요와 청매는 억불정책이 극에 달했던 당시 깊은 선정을 얻은 선사이면서도 두 차례 왜란의 위난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막후에서 혹은 승병장으로 나서는 등 중생구제에 적극적인 스님들이었다. 승가에서는 알려져 있지만 일반에는 다소 낯설다. 학담 스님은 “장엄한 두 스님의 정진을 우리는 그간 너무 몰라라 하고, 고작 중국 조사선 불교의 종파타령을 하거나 경허(鏡虛) 이후 문파중심 선불교의 범맥 타령이나 하고 지냈다”고 그 이유를 비판적으로 말했다.

두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지만, 후대가 각각 정리한 ‘소요당집’과 ‘청매집’에 남긴 게송과 후학들이 쓴 행장·비문을 통해 미루어 볼 수 있다. 또 두 스님은 같은 스승과 거했던 사찰 등 인연이 여럿 있지만 남겨진 글에 서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학담 스님은 “두 분의 역할과 출가 전 신분이 달랐던 것 같다. 소요 스님이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다면, 청매 스님은 승병장으로 직접 나설만큼 적극적이고, 승가를 팔천(八賤·조선시대의 여덟 천민)으로 전락시킨 유교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 성토가 문집에도 많이 나온다”며 “소요 스님이 입적 후에 효종으로부터 ‘혜감(慧鑑)선사’라는 호를 받은 반면, 의병장으로 나선 청매 스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요 스님은 전남 담양 사람으로 열셋에 출가해 조선시대 불가의 두 축이라 불리는 휴정과 부휴 선사 두 스승을 잇달아 모셨다. 청매 스님은 출생과 출가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학담 스님은 “당시 승가의 중심이었던 호남이 아니고 영남 쪽 사람이었고, 신분도 낮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청매 스님은 불경뿐 아니라 노장, 유가경서, 사기, 춘추에도 통달의 경지를 보이는데, 이는 유교에 대한 반발로 되레 많은 공부를 했던 것”으로 보았다.

책은 단순히 게송을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스님의 선풍(禪風)과 선관(禪觀), 그들이 가졌던 시대불교의 과제까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지금 한국불교의 선병(禪病·선의 문제점)은 선의 깨달음이 내면의 닫힌 개아의 휴식을 완결점으로 하는 데 있다”며 세상과 교류가 없는 수행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 근래에 볼 수 없던, 게송에 답하거나 칭송하는 ‘평창송(評唱頌)’까지 더해져 학담 스님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비교적 선가와 일반 대중에도 알려져 있는 청매 스님의 ‘십무익송(十無益頌·열 가지 이익 없음의 노래)’에 대해 ‘십유익송(十有益頌·열 가지 이익됨의 노래)’을 이끌어 보이기도 한다.

학담 스님은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중이던 1970년 경주 분황사에서 출가해 승복을 입고 대학생활을 했으며 1980년대 조계종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고, 선(禪)·교(敎)에 두루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님은 “도인도 시대의 아픔을 껴안을 수 있을 때 참선 도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며 “앞으로 근세 불교 중흥의 중심에 있던 초의(草衣) 선사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에 나섰던 용성(龍城) 선사의 저술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