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을 강요하는 세상

대중은 장황한 것을 싫어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도 러닝타임 2시간이 넘으면 ‘지루하다’고 느끼죠. 그러니 곤혹스러워도 들어야 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나 상사의 진부한 농담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까요?

세상은 뭐든 줄이는 쪽으로 변해왔습니다. 교통의 발달은 이동시간을 줄였고, 통신의 발달은 정보소통시간을 단축시켰죠. SNS 역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처럼 단문(短文)을 선호합니다.

요즘은 평소 대화 역시 최대한 줄여 쓰려 합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태후’, ‘별에서 온 그대’는 ‘별그대’로 불렸죠.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된 ‘급식체’(급식 먹는 10대들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최소한의 표현으로 소통하려 합니다. ‘ㅇㄱㄹㅇ’(이거레알·이거 진짜야), ‘버카충’(버스카드충전),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등이 그 예입니다. 좋게 말해 경제적 표현일 뿐, 날을 세워 보자면 언어 파괴죠.

대중문화 콘텐츠도 점점 더 조각나는 추세입니다. TV를 통해 본방송을 챙겨보지 않는 스마트폰 세대들은 각 방송사들이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에 올려 놓은 2∼3분가량의 하이라이트(일명 짤)를 통해 보고 싶은 내용만 골라 보죠. 인기 있는 짤의 조회수는 100만 뷰를 쉽게 넘깁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몰입하길 꺼리는 요즘 대중의 세태에 발맞춘 전략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기사도 요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포털 사이트의 쌍두마차인 네이버와 포털이 각각 ‘요약봇’과 ‘자동요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기사(특히 신문의 경우)는 정해진 매수만큼 씁니다. 그 안에 핵심 정보를 담으며 적절한 시각까지 버무려야 하죠. 문장 하나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만 바뀌어도 전달하려는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요약 서비스를 행하는 주체는 인공지능입니다. 바둑 9단 이세돌과의 대결에서도 압승을 거둘 정도로 계산과 논리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과연 인간의 감성과 의도가 포함된 뉘앙스까지 읽을지는 의문이죠.

김영하 작가는 지난 2010년 자신의 산문 ‘상상은 짬뽕이다’가 일부 중학교 검정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교과서에 글이 담긴다는 것은 해당 작가에게 일종의 감투죠. 하지만 이를 거부한 김 작가는 tvN ‘알쓸신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편소설은 잘라서 쓰면 안 된다. 작품이 통째로 실리거나 부록으로 만들어지는 건 좋다.” 요약은 곧 편리성입니다. 빨리 익히고 쉽게 소화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이는 그 속에 담긴 영양을 온전히 섭취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편리하고 빠른 게 능사는 아닌데 말이죠.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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