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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시인이 등단 9년 만에 첫 시집 ‘달의 기식자’(중앙북스·사진)를 펴냈다.

문예중앙시선의 52번째 작품이다.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김 시인이 지난 9년간 묵묵히 써온 50여 편의 시를 한데 묶었다.

표제작은 시인의 존재론적 고민이 투영된 작품이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밤이여 오라, 너를 들이쉬어 나를 낳으리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밤은 나와 타자의 구분을 혼란하게 하는 시간의 역설적 표현이다.

밤은 세상의 온갖 사물이 뒤섞이는 시간이고, 달은 이런 밤의 혼란 속에서 오래전부터 존재를 밝히는 빛이자 나아갈 길을 알리는 길잡이다.

그래서 김 시인은 “우리는 달의 기식자／ 하루에 밤을 먹어치우고／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며 달의 ‘식객’을 자처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론 “유랑의 낱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창궐”하는 낱말들의 힘으로 “흰 종이에 씨를 뿌리기 위해／ 나는 행을 배열한다”고 외친다.

김 시인은 시를 쓰면서 늘 변신을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달의 기식자에서 흰긴수염고래, 늙은 사진가, 백색 무용수로 변화하며 나를 벗어난 무수한 타자가 되고자 노력한다. 시인에게 시 쓰기란 결국 철저한 ‘타자 되기’이기 때문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