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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올림픽은 121년 동안 지구촌을 대표하는 ‘평화의 제전’이었지만, 때로는 정치에 오염(汚染)되기도 했다. 1916년 베를린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올림픽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됐다. 1931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1936년 올림픽을 다시 유치했지만, 1933년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는 올림픽을 나치의 국제무대 등장과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고, 1940년 도쿄·1944년 런던으로 예정됐던 올림픽은 열리지 못했다.

1972년 개최된 서독 뮌헨올림픽에서는 팔레스타인의 극좌파 게릴라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잠입해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는 올림픽 사상 최악의 유혈 참사가 발생했다. 1980년 모스크바·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모두 ‘냉전(cold war)’의 여파로 반쪽 대회가 됐다. 소련은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미국은 곧바로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국 등 40여 개 나라가 참가하지 않았다. 1983년 9월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동서 냉전의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고, 1984년 3월 미 국무성이 소련 올림픽 관련 외교관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하자, 소련이 일부 동구권 국가와 함께 불참을 선언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시작된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정치 바람을 덜 탔다. 1940년 삿포로에서 열리기로 했던 제5회 동계올림픽은 일본이 중일전쟁 등의 여파로 개최 불가를 선언해버렸다. 다음 대회는 2차대전 뒤 1948년 스위스 장크트모리츠에서 개최됐는데,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은 아예 참가가 거부됐다.

내년 2월 평창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도핑 논란’에 휩싸인 러시아의 참가가 제한됐고, 미국도 한때 참가를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여 개최국인 우리나라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두 차례의 반쪽 대회 이후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하는 화합의 올림픽이 됐다. 이번 평창 대회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협조도 필요하지만, 정부도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만들어보겠다는 지나친 욕심은 조절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