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사이즈’ 중국 장강 한가운데로… 크루즈 타고 ‘세 개의 협곡’ 훑는다[박경일기자의 여행]](http://image.munhwa.com/gen_thumb/202405/2024050201032412048001_300.jpg?v=20240502230554)
이미지 크게보기 이태호 교수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아트센터에서 서울옥션 경매를 앞두고 프리뷰를 위해 전시된 작품 ‘기타연주자’(82×88.5㎝) 앞에서 천경자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위) ‘여인’(오른쪽·32.2×23㎝, 1960년대 추정), ‘태국의 무희들’(왼쪽 아래·40.4×31㎝, 1987년)도 이번 경매에 출품되는 천경자의 작품들이다. 김동훈 기자 dhk@·서울옥션 제공
- 이태호 교수 “재평가해야”… 13일 서울옥션서 5점 경매
6·25이후 日근대화풍 벗어나
1970년대 서양화에 민화 차용
원색의 생명감에 순수미 빛나
시대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작업
미인도 스캔들로 멈춰 안타까워
화가 천경자(1924∼2015)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1991년부터 시작해 아직도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4호(26×29㎝)짜리 작은 그림 ‘미인도’ 때문이다. 그러나 천경자의 작품세계, 그리고 그가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1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아트센터 1층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를 앞두고 같은 장소에서 ‘천경자는 정말 좋은 작가인가’라는 타이틀로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의 특강을 마련했다. 마침 이번 경매에는 ‘여인’(1960년대 작 추정), ‘기타연주자’(1960년대 추정), ‘꽃’(1960년대 추정), ‘기쟈의 피라믿’(1974년), ‘태국의 무희들’(1987년) 등 모두 5점의 천경자 작품이 출품됐으며 호림아트센터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리뷰 전시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천경자는 정말 좋은 작가일까. 일단 그림값으로 보면 천경자는 좋은 작가 같다. 2016년 경매 시장 기준 낙찰총액이 42억5000여만 원으로 김환기,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에 이어 5번째에 해당하며, 호당가격도 1600여만 원으로 박수근, 장욱진, 이중섭, 김환기에 이어 5번째다. 이번에 출품된 5점의 작품도 대부분 낙찰 추정가가 억대에 이른다.
그러면 미술사학자 이 교수는 천경자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먼저 그는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70년대 ‘동양화니 서양화니 구분할 것도 없는 싱싱한 현대작가로, 작가가 체험한 인생의 본질적인 외로움, 슬픔, 황홀함을 모두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되새김질한 작품세계’라고 천경자를 높이 샀다”며 운을 뗐다.
이어서 이 교수는 천경자의 삶을 동경 유학 시절, 6·25전쟁 전후 시기,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이후의 해외여행 시기 등으로 나눈 후 작품 세계의 변모를 설명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1941∼1944)에서 천경자는 일본 근대채색화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귀국 후 천경자는 뱀과 인골처럼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소재를 선택해 자기 색깔을 건지며 채색화법을 개발했고, 일본화식 근대채색화풍을 벗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이 6·25전쟁 중에 그린 뱀 그림 ‘생태’(1951, 서울시립미술관)다.
이후 천경자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수묵화가들과 현대미술을 추구하던 서양화가들 틈에서 19세기 유럽의 인상파부터 입체파, 표현파, 초현실파 등 모더니티 형식까지 흡수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서 천경자는 서양화에 이어 전통적인 민화 형식을 차용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법을 다졌다. ‘꽃’(1970년대, 개인소장)을 비롯, 꽃과 여인 연작들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1970년대 이후에 천경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문명 이전의 인간을 찾는 원시주의, 즉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을 추구한 폴 고갱에 공감해 1969년 남태평양 고갱의 타히티를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서아시아, 인도,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마존 지역을 떠돌며 더욱 원초적인 원시성을 만났다. 생명감 넘치는 강렬한 원색의 순수미가 빛나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는 에로티시즘으로 이어지며 건강한 미소년이나 탄력 넘치는 곡예사 등의 몸을 탐했고, 누드군상 작품인 ‘황혼의 통곡’(1995, 서울시립미술관)과 ‘환상여행’(1995,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만개한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1991년 시작된 미인도 위작 스캔들은 결국 그의 작품세계가 더 무르익고, 세계적 거장으로 도약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래도 이 교수는 천경자의 작품 세계에 대해 “우리 색, 컬러풀한 한국인의 색채감각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민족회화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천경자는 한국 화가면서 유럽 유화의 장점을 수렴하고, 모더니즘도 자기화했습니다. 구습에 온몸으로 맞서며 ‘나, 여자’의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냈고,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류애와 문명사적 질문에 대해 누드군상 작품으로 답했습니다. 한창때 그 마력의 작업을 접었으니 우리 미술사의 큰 손해죠.”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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