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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한전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을 갖고 있는 뉴젠사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결정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영국 방문을 통해 이 협상의 물꼬를 튼 것은 잘된 일이다. 그러나 영국 원전 수출이 실제로 성사되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 정부가 보증할 전기 판매단가 결정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탈(脫)원전 정책이다.

영국 원전 사업은 사업자가 자금을 조달해 건설한 후 전기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국 정부는 차액보증계약(CfD)을 통해 ‘스트라이크 가격’이라 불리는 최저 판매단가를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유치한다. 프랑스 국영전력공사(EDF) 주도로 이미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에 대해서는 MWh당 92.5파운드, 즉 kWh당 약 135원으로 스트라이크 가격이 결정된 바 있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단가가 50원대이므로 135원의 스트라이크 가격이 유지된다면 이 사업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런데 실제 투자 매력은 협상을 통해 결정될 스트라이크 가격과 우리 원전의 영국 내 건설비 추정액에 따라 달라진다. 영국에서는 해상 풍력의 경제성이 많이 개선돼 요즈음에는 MWh당 50파운드대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영국 정부가 탄소 저감을 위해 원전을 장려하긴 하지만, 힝클리 포인트 C 스트라이크 가격만큼 높은 가격을 보장해 주긴 힘들다고 보인다. 그래서 스트라이크 가격 협상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컨소시엄 구성과 자금 조달에도 시간이 상당히 걸릴 수 있다. 스트라이크 가격 협상과 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지급보증에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한데, 탈원전을 추진하는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일지 의구심이 든다.

한편, 영국 정부가 우리나라의 원전 APR1400을 인허가하는 과정에는 불가피하게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EDF가 건설하고 있는 EPR의 경우 인허가 과정이 약 5년 걸렸다. APR1400의 경우 유럽의 인증을 이미 받았으므로 다소 단축될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도 스트라이크 가격 협상 기간과 인허가 기간 등을 고려하면 무어사이드 원전이 실제로 건설이 착수되기까지는 향후 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3, 4호기 건설이 취소된 상황에서 신고리 5, 6호기와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사이에 5년 정도의 공백이 생긴다면 원전 산업 공급망 붕괴가 우려된다. 이미 두산중공업의 임원 감축을 비롯해 원자력계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원전 중소기업의 도산이 곧 현실화할 수 있다. 이는 원전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영국이 우리나라의 원전을 원하게 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원전을 꾸준히 건설해 오며 축적한 우수한 기술력과 아랍에미리트(UAE) 건설을 통해 입증한 해외 건설 능력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체코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대처에 가장 유력한 수단이 원전이라는 인식 아래 현재 전 세계적으로 160기의 원전 건설이 예정돼 있다. 탈원전은 세계적 대세가 아니다. 원전시장은 해체시장과 비교가 안 되는 큰 블루오션이다. 우리가 국내 원전 건설을 계속해 원전 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야만 영국 원전을 시작으로 세계 원전시장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이 시장은 이번에 우리에게 진 ‘원전굴기’ 중국에 돌아간다. 정부는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될 성급하고 극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을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