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김동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정부, 내년 1兆 구조조정 펀드
‘살릴수 있는 기업 최대한 살린다’
부실 예방·경쟁력 강화에 중점

‘시장 분위기 활성화’ 방안 없고
근로자 지원 방안도 빠져있어

문재인 정부에서의 구조조정 정책 밑그림은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산업생태계를 고려하는 등 기존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방식을 벗어나겠다는 정책적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져 이전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8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제시된 이번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은 ‘재무·금융 관점을 탈피한 산업계 중심’이다. 업종 전반의 불황과 해당 업종의 기업이 부실화하기 이전에 사업재편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하도록 하고, 부실화된 기업은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을 통해 금융의 논리로 기업을 죽이지 않고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의미다. 국책은행에 민간전문가를 투입하는 것 역시 금융적 판단보다 업계의 시각과 산업적 측면까지 고려한 중장기적인 결정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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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구조조정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간주도’의 구조조정을 강조해왔다.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지난해 6월 처음 구성돼 가동됐다. 당시 유일호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삼각편대를 구성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기존에 이 역할을 해오면서 ‘밀실 행정’이란 비판을 받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벗어나 금융과 산업적 측면을 두루 고려하겠다는 의도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임 전 위원장과 주 전 장관이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 구조조정을 각각 맡았던 ‘분과 운영시스템’은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나타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금융주도의 기업구조조정 방식과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무게를 둔 산업 구조조정의 양립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기업의 회생이나 미래 가치를 우위에 둘 수 있는 시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우선이지만 이번 정책에선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가 자본시장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1조 원가량의 구조조정 펀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이 제도만으로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긴 어려워 보인다. 기업 부실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국책은행이 나서는 식의 구조조정을 벗어날 수 있도록 시장이 작동하는 방안이 이번에도 제시되진 않았다.

조선업 밀집지역에서 발생했었던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 역시 ‘지방자치단체·지역전문가 등 지역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반영’이란 내용에 그칠 뿐, 핵심이 되는 근로자 지원에 대한 방안 등도 이번 구조조정 계획에 빠져 있다.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 출자회사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근본적 대책도 없다. 민간인들이 참여하는 출자회사 관리위원회에 힘이 실리면서 국책은행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간 영역에서 구조조정 기업들에 대한 회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시장을 활성화하는 매우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며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국책은행의 역할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