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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KAIST 교수 경영학

국회가 6일 정부의 희망대로 2018년 최저임금 인상액에 대해 일정 부분 정부 예산에서 지원해주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으로,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에게 월 13만 원씩 지원하겠다는 것이다.이는 민간 근로자들의 임금 일부를 정부에서 주는 것으로, 공무를 담당하지 않는 이들을 공무원화한 것이다. 세계에서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유럽 국가들은 민간부문이라 하더라도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근로자들을 공공부문으로 간주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는 공공부문 고용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대폭 훼손한 선례는 앞으로 여러 후유증을 낳을 것이다. 이제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지 못할 영역이 없게 됐다. 결국, 현금을 퍼주는 남미형 사회주의적 복지의 물꼬가 트인 것으로, 그간 가계부채는 높아도 정부의 건전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 경제의 위험을 관리해온 재정 운영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은 우리나라에서 소수의 특별한 기업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250인 이상 대형 사업장의 고용 비중이 12.8%에 불과하고 19인 이하 사업장의 고용 비중이 54.2%에 해당하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30인 미만의 사업장이라고 하면 전체 고용의 60% 정도가 해당하는 사업장이다. 이러한 후진적이고 취약한 고용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그리스뿐이다. 그리고 고용자 없는 자영업자가 연간 60만 개 이상 탄생하고 폐업하는, 지옥과도 같은 골목시장 경제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근로자의 수입 증대와 더불어 이러한 급여를 줄 수 없는 사업자들은 경제계에서 퇴출시키는 이중성을 갖는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것은 단기적으로 사업자에게 고통스럽지만, 생산성 향상과 구조조정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용 구조는 자영업과 영세 중소업의 고용 비중을 줄이고 대형화하는 방향의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혈세(血稅)로 보전(補塡)하는 것은 좀비기업을 양산하거나 영세사업자로 계속 남게 해 가능하면 최저임금을 주는 역효과를 만들게 된다. 결국,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장기적인 구조조정의 긍정적 효과마저 말살한 선심 정책이다.

필요한 구조조정을 미루고 지연하면서 버티다 맞은 것이 외환위기이고,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나라가 독일이다. 반면, 고통을 미루고 버티다가 이제는 국민 실질소득에서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 나라가 일본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도 전혀 배우지 못한 우매한 선심 정책이 이번 예산국회에서 자행됐다. 이는 통상적인 복지정책을 넘어 행정 권력이 시장의 결정을 대신하는 관치의 확대다. 또, 경제가 부담할 수 없는 무분별하고 무원칙한 재정을 운영해 국가 파산 상태를 맞은 베네수엘라나 그리스의 실패를 답습하는 일이자 사실상 자유 시장경제의 원리를 수정한 것으로, 헌법을 다시 쓰는 것과 같은 혁명적 조치인 것이다. 한 번 무너진 질서는 쉽게 복원하지 못한다.

국제통화기금(IMF), OECD 등 국제기구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개혁 등 권고 사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국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라는 문구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선전하는 문 정부의 남미식 사회주의화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 이번 최저임금 예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