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점은 ‘희망’… 함께 달리며 ‘육상 꿈나무’ 키우고 기부도

이미지 크게보기 러닝 기부 동아리인 ‘유콘’ 회원들과 승철이(빨간 옷 입은 이)가 지난 1월 대구 동구 아양교 앞에서 달리기를 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유콘 제공

러닝 기부 동아리 ‘유콘’

‘육상 국가대표 상비군’고교생
같이 훈련하면서 고민도 해결

대학생·20~ 30代직장인 뜻모아
조만간 회원 1000명 돌파 예상

1㎞ 뛸 때마다 400원씩 ‘쾌척’
‘사랑의 연탄’등 봉사활동 다양

“승철이(17·가명)는 오늘도 뛴다.”

정신장애 2급인 어머니, 몸이 불편한 아버지, 부모의 방임과 항상 싸움으로 큰소리가 오가던 집안. 그런 집을 피해 어린 승철이가 향한 곳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이른 아침에도, 방과 후에도…. 따뜻한 집으로 향하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승철이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운동장에 홀로 남아 달리고 또 달린다. 언젠가부터 집안이 시끄러울 때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한 것이 이제는 그의 일과가 됐다.

운동장에서 묵묵히 달리고 있는 승철이 모습이 육상부 감독 눈에 띄었다. 감독은 승철이를 육상부 선수로 영입했다. 달리기는 이제 승철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승철이는 지금 장거리 육상 국가대표상비군이 됐다.

본격적으로 육상 훈련을 시작한 승철이는 기숙사 합숙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문제에 부닥쳤다. 마음을 맞춰 함께 훈련할 파트너가 없었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은 지루하고 고된 ‘자기와의 싸움’. 이런 훈련에서는 훈련을 같이할 마음이 맞는 파트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좀 더 즐겁게 훈련할 수 있고, 그러면 훈련 효과도 배가되기 때문이다.

그런 승철이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복지재단을 통해 러닝 기부 동아리인 ‘유콘(UCON)’에서 육상 꿈나무를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온 것이다. 유콘은 ‘You can Change Our Next’의 약자로, 지난 2014년 결성된 러닝 기부 모임이다. 당시 모 스포츠 업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을 선발했는데, 이들이 모임을 하면서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달리기와 기부를 결합한 동아리를 결성했다. 뜻이 맞는 몇 명의 대학생이 모여 시작했지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20~30대 직장인들이 가세하면서 모임은 급격히 불어났다. 서울과 대구에 지역 모임이 결성돼 조만간 회원이 10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주 수요일 모여 달리기를 하면서 친목도 쌓고 기부도 한다. 전국의 마라톤 대회 등에도 참가해 1㎞를 뛸 때마다 400원씩 기부한다. 참여하는 회원이 늘어나다 보니 봉사활동도 다양해졌다. 지역 아동복지센터에 기부활동을 비롯해 연말 불우이웃 돕기 연탄봉사활동, 산타클로스 캠페인, 기저귀 기부활동 등 종류도 많다.

대구지역 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훈(28) 씨는 “동아리에서 고정적으로 기부하는 아동복지센터가 3곳이나 된다”며 “모임을 통해 매달 평균 100만 원가량을 기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씨는 “많은 기부활동을 하고 있지만, 승철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회원들이 좋아하는 달리기와 기부를 결합해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숨통이 트이고 상쾌해진 기분이랄까요? 훈련하면서는 선수들끼리 힘들다는 얘기밖에 하지 않는데, 형 누나들과 달리기할 때는 신선한 이야기와 조언을 많이 해 주니까 피와 살이 되는 것 같아요. 계속 이런 분들과 같이 뛰었으면 좋겠어요.”

승철이는 유콘과 자신을 연결해 준 복지재단을 찾아 이 같은 소감을 남겼다. 유콘을 연결해 준 복지사는 “예전에 승철이와 아버지가 복지재단에 깜짝 방문한 적이 있었다”며 “승철이가 간식 사 먹을 돈을 모아 사과 몇 개를 사 들고 와 유콘과 자신을 연결해 준 복지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말했다.

“승철이가 복지관의 요물이지요, 요물. 이놈이 인제 국가대표 후보도 하고 앞으로 더 잘될 일만 남았어예. 크면 얼마나 복지관에 감사하겠습니꺼. 복지관 선생님들이 안 도와주셨으면 우리 승철이 이렇게 못 키웠습니다. 늘 고맙습니데이.”

함께 방문했던 승철이 아버지는 유콘을 연결해 준 복지사들에게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그런 승철이 아버지는 얼마 전 지병이 심해지면서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막내아들이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가 멋지게 뛰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끝내 그는 아들의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큰 나무 그늘이 돼 주는 부모님과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승철이에게는 아버지 그늘을 대신해 줄 든든한 유콘 형과 누나들이 생겼다. 승철이는 오늘도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함께하는 우리, 행복한 어린이 ’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