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시간벌기 전술에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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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최근 한국의 안보 환경이 크게 악화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지난 9월 3일의 6차 핵실험에 이은 11월 29일 강력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성공하자, 즉각 ‘국가 핵무력 완성’과 미국 전역 강타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에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면, 한·일이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정은의 “이 세상 점령 못할 요새가 없고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는 호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선 원유 차단, 해상 봉쇄, 금융 제재, 외교 단절 등 가능한 모든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미·북과 미·중 사이에 놓인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전에 대해, ‘완전 파괴’와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을 쓰며 경고해 왔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대화 노력을 ‘시간 낭비’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대북 인내는 끝났다고 공언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도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우리가 처리할 것”이라는 강경 반응을 보였다. 이어 북한의 미사일 실험 직후 중국 시진핑 주석과 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주요 제재를 약속했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 실험에 대해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으나, 추가 제재 조치 요구에는 “할 만큼 했다”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또한, 대북 원유 공급 차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해상 봉쇄에 반발한다. 러시아는 북한의 도발을 비난하는 동시에, 미국의 강경 대응도 비판한다. 일본은 대북 제재에 미국처럼 적극적이다. 한국은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 이렇듯 4강과 한국의 대북 입장이 다르다.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방북 러시아 대표단에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대한 일보 후퇴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북·미 회담, 남북 회담 및 6자회담 등에서, 상황에 따라 시간벌기, 지연, 일시 후퇴, 기정 사실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 우리는 북한 동향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근래에 청와대와 송영무 국방장관이 불필요한 갈등을 빚었다. 송 장관은 지난 1일 대북 해상 봉쇄 조치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이 오면 거부하지 않기로 정부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청와대는 즉각 ‘개인 의견’이라며 부인했다. 송 장관은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때 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한 상태라 국제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에 있다”고 답변했다.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과 북한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남북대화를 희망하고 중국 방문을 앞둔 문 대통령은 ‘운전석’에서 진로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선택을 못 하고 있다. 문 정부는 미·일처럼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규탄하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한다. 이런 입장은 좋아 보이지만, 북·미 모두의 신뢰를 잃을 위험이 크다. 한국은 위험 부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과 평화’의 단순 이분법과 ‘희망적 사고’만으론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한·미 동맹 유지·강화는 생존을 위한 필요 불가결의 핵심 요소다. ‘비핵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강대국 간 ‘빅딜’ 대상이 되지 않으며, 중국의 고압적 자세를 허용하지 않으려면, 한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단호히 대응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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