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토마 피케티. 연합뉴스

- 애프터 피케티(After Piketty) / 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 유엔제이 옮김 / 율리시즈

불평등 논의 부른 ‘21세기 자본’ 이후
‘피케티 옳나’ ‘富의 불평등 중요한가’
당사자 피케티 등 학자 25명이 진단

“상위1% 영향력, 트럼프 승리로 증명”
크루그먼 “글로벌 자본세 제안 지지”

지난달 영국 가디언지는 전 세계 최고 부자들(슈퍼리치)에게 부가 쏠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새로운 도금시대(鍍金時代·Gilded Age)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 은행 UBS 등이 공개한 ‘2017년 억만장자 보고서’에서 현재 10억 달러 이상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가 1542명이며, 이들은 1년 사이 재산을 5분의 1 가까이 늘려 총 6조 달러에 달하며,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1차 도금시대는 미국에서 1865∼1890년경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하며 경제규모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카네기와 록펠러 등 소수의 자본가 가문이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정치·경제의 담합·비리가 횡행했던 배금주의 시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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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지의 기사는 ‘21세기 자본’(2014)을 써서 일약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던진 의제를 의식한 것이다. 유럽인인 피케티는 ‘제2차 도금시대’와 함께 ‘벨 에포크’(미국의 도금시대와 유럽의 풍요로운 시대를 묶어 일컫는 시기)라는 말을 썼다. 그는 ‘21세기 자본’에서 노동의 몫은 줄어들고 자본의 몫은 계속 늘어나 마침내 자본이 자본을 낳는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출현하면서 자본주의에 내재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은 유명해진 용어인 ‘상위 1퍼센트’가 불평등 증가의 주요 요소라는 게 피케티가 드러낸 것 중 하나다. 특히 피케티는 극소수의 최고 소득자에게는 훨씬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해 파장을 불렀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10만 부(2015년 말 기준)가 넘게 팔렸다.

제목이 말해주듯, ‘애프터 피케티’는 ‘21세기 자본’ 출간 이후 3년 만에 그동안의 파장과 학계의 논란, 미래의 전망을 25명의 전 세계 경제·사회분야 학자를 통해 분석하는 책이다. 영문판을 내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진원지가 된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기획했다. ‘불평등의 진단과 해법’이란 피케티의 의제에 참여한 학자들만 해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 마이클 스펜서 등 쟁쟁하다. 한 소장 학자의 한 권의 책에 대한 이 같은 ‘헌정’은 역사상 없었다. 피케티도 참여 학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펼친다.

경제학자 J 브래드퍼드 드롱 등 3인이 쓴 서문에 나오는 책을 편집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흥미롭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것을 피케티의 확신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상위 1퍼센트가 정치적 영향력도 좌우하게 된다는 게 피케티의 전망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의 필자들은 ①피케티는 옳은가? ②우리가 신경 써야 할 만큼 불평등이 중요한가? ③결론은 무엇인가? ④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정을 거치며 집필에 참여했지만 저마다 다른 관점을 보인다. 3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피케티 혁명’이라 부르면서 그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미국의 경우 상위 1퍼센트의 부상을 설명할 때 피케티의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인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소득은 여전히 부의 불평등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CEO 등 상위계층의 임금소득이 엄청나게 증가해 현재 미국의 최상위 부자들이 자본소득자들보다 경영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들을 피케티는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하지만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이해(利害)가 오히려 불평등이란 현실을 능가한다”며 부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 제안에 기대를 보낸다.

피케티는 책의 말미에 실린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화합을 향해: 21세기 자본이 주는 교훈’이란 글에서 “사회과학계는 학문적 경계와 별 쓸모없는 방법론적 입장을 놓고 시시콜콜한 다툼을 벌이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 같다”며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모인 이 책이야말로 학문 간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충실한 예”라고 평가했다. ‘21세기 자본’이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경계를 넘어 논의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보인다. 780쪽, 3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