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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김호웅 기자 diverkim@
- ‘한국의 경제생태계’ 출간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5년 대통령제 ‘업적 조급증’
장기국가프로젝트 사라지고
관료들은 ‘위험한 수술’회피
경제·사회 전반 병리현상 확산
정부·기업·가계간 순환 끊겨
생산성·재정 파탄 악순환 위기
생태계 복원 첫 단추 끼우려면
정치권부터 기득권 내려놔야
“경제생태계의 침하 현상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오랫동안 ‘정치가 경제의 상위 개념’으로 군림하면서 경제가 과잉 정치화, 과잉 이념화의 덫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헌은 경제생태계를 왜곡시킨 정치생태계 복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정덕구(사진) 니어(NEAR)재단 이사장은 경제가 생성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자연생태계와 유사하다고 본다. 소멸 대신 진화나 혁신의 순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거나 정체되기도 한다. 또 경제는 정치, 사회 등 다른 부문의 생태계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작동한다. 민간연구기관인 니어재단은 정 이사장을 포함한 13명의 분야별 연구가들이 2년에 걸쳐 한국경제를 생태계의 관점에서 분석한 ‘한국의 경제생태계’(21세기북스)를 30일 출간했다. 정 이사장은 “한국 경제가 선진 시장경제를 따라잡아야 할 시기에 내부의 병리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체기에 진입한 원인을 찾으려 했다”고 말한다.
그가 총론 격으로 쓴 ‘생태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경제’라는 글은 특히 ‘5년 단임’ 정치생태계가 가져온 경제생태계의 왜곡을 작정한 듯 비판해 눈길을 끈다. 임기 내 끝내려는 조급함으로 여러 정권에 이어져야 할 장기 국가 프로젝트가 사라졌고, 정책 주기를 단기화했다. 국책연구기관 등 공공 부문도 ‘단임 정신’이 배어 국가 사회 전반에 관한 장기 예측에 손을 놓고 있다. 단임 정치는 경제 내부의 병리 현상을 담합 속에 방치하고, 관료들은 순종하되 추종하지 않는다는 ‘5년 처신 방식’을 터득해 위험한 외과 수술을 회피한다. 무엇보다 “경제를 진영 간 싸움에 끌어들이고 과잉 이념화시키면서, 자본과 노동을 분리·적대시켜 외발자전거를 타고 5년간만 달리려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기업은 담대한 위험 투자를 기피하고, 노동조합은 이익 담합 체계에 갇혀 정치화·권력화의 길을 간다. 정 이사장은 “그러는 사이 한국의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은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사회생태계 역시 거대한 담합구조와 지연·학연의 배타적 소속감, 이념의 분화 현상에 갇혀 생태적 건강성을 잃고 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 신뢰 자산형성이 어려워지고 갈등비용만 쌓여왔으며, 사회에서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려워져 인물생태계가 고갈되고 있다. 정 이사장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정치·사회적 거대 담합 구조에 갇힌 채 기득권 보호 의식이 강해 이를 환경적 요소로 하여 형성되는 경제생태계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환경 속에 생겨난 우리 경제생태계의 또 하나 특징은 정부-기업-가계 간 자원의 순환체계가 끊어지거나 약화된 ‘단절 현상’이라고 정 이사장은 보았다. 특히 기업의 성장이 투자와 고용,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기업-가계 부문의 순환체계 단절은 심각하다. 그는 “그동안 보수 정부의 공급자 중심 정책이나 진보 정부의 수요자, 소비자, 가계 중심 정책이 모두 실패하는 것은 기업과 가계를 이어주는 피댓줄이 끊겨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피댓줄을 튼튼히 하는 것이 경제 회생, 특히 가계 부문 회생의 선결 요건이며, 투자와 고용, 민간 소비를 모두 강화하는 두발자전거 경제로 복귀하는 길”로 보았다.
정 이사장은 “경제생태계 복원은 자체의 힘만으론 어렵다”며, 또 “정치가 스스로의 이익·이념적 담합구조를 해체하지 못하면서 경제·사회생태계만 강제로 해체시키려 한다면 실효는 없고 갈등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에게 찾아올 다음 위기의 형태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의 생산성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국민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이를 정치가 막으려다 재정 파탄을 일으키는 악순환적 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경제·정치·사회생태계를 함께 묶어 그들의 상호관계를 건강하게 복원하는 하나의 커다란 정치·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생태계 복원의 첫 단추”라면서 “우선 개헌과 함께 정당 제도, 선거 제도를 개혁해 현재의 칡뿌리 민주정치 풍토를 풀뿌리 민주 정치 문화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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