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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계속하는 가운데, 적폐 청산을 앞세운 사정(司正) 정국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에 자행된 불법과 비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다른 쪽에서는 정치 보복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불법과 비리를 바로잡는 일에 대해서야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준과 절차가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근거로 민주주의의 실현인 것처럼 강조될 때에는 매우 위험해진다.

불법과 비리를 확인·판단하는 것은 사법(司法)의 역할이다. 불법이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혹만으로 단죄하는 여론재판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헌법은 이를 막기 위해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부터 이 헌법 원칙을 무시하고 기대와 다른 결정, 다른 판결을 한 법원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법치에 역행하는 일이다. 이를 ‘민주’가 ‘법치’에 우선한다는 말로 왜곡해선 안 된다. 민주와 법치는 ‘인권’이라는 수레를 굴리는 두 바퀴처럼 서로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일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국민 다수의 의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던 경우처럼 민주적 절차와 방식, 민주적 다수에 의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본 가치’에 해당하는 것들은 헌법상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는데, 다수의 이름으로 이를 공격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방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온갖 오욕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무죄의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그동안 정부와 언론에서 얼마나 편파적인 태도를 취했는지가 ‘무죄 추정의 원칙’과 관련해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자 하는가?

물론 김관진 전 장관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불법과 비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해당 판사의 신상을 털고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를 조장하는 듯한 여당 정치인들의 발언은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과거 대법원에서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총리가 출감할 당시 추미애 대표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나 이번 김 전 장관의 석방에 대한 발언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존중,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존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그보다 작을까?

더욱이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고, 그 때문에 사법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무엇보다 우선된다. 그런데 최근 여당에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믿고 사법부까지도 압박하는 것은 법치 왜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가 27일 ‘담당 판사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사법권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등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성명을 낸 것도 바로 그 점을 우려한 것이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여당이라 하더라도, 그 지지를 오·남용할 경우 반작용도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