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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왕 / 유혜율 글, 김윤수 그림 ／ 바람의아이들

이 그림책의 표지에는 하늘을 향해 머리카락이 솟아오른 한 아이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평화로운 표정과 달리 아이를 둘러싼 하늘에는 폭격기가 날고 낙하산을 탄 병사들이 내려오고 장갑차에서는 붉은 화염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갈색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땅 위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막의 왕’은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어린이가 겪는 갈등과 혼란을 다룬다. 책을 펼치면 모자 달린 옷을 푹 뒤집어쓴 채 땅바닥을 보고 홀로 걷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엄마 집에는 아빠가 없고 아빠 집에는 엄마가 없다. 엄마 집 냉장고에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이는 주인공처럼 ‘Go!’와 ‘Stop!’을 표시하는 신호등 자석이 나란히 붙어 있다. 주인공의 마음속 얘기를 들어주는 건 코끼리 인형뿐이다.

고민 끝에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사막으로 간다. 사막여우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그러면 강해질 거라고 속삭이고 전갈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선인장 가시 사이를 빠져나와 전쟁 같은 가슴속 아픔과 제대로 맞선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통과 부딪히고 나자 사막에는 고요한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주인공을 다독여주기 위해서 코끼리가 다가온다. 코끼리는 아이의 다정한 동반자이면서 외로운 성장의 유일한 증인이고 아이 자신의 숨겨진 내면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은 심리학을 전공한 유혜율 작가가 글을 쓰고 볼로냐도서전에서 ‘미술관에서 만난 수학’으로 라가치상 우수상을 받은 김윤주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에 겹겹이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주인공 어린이의 복잡한 내면을 파고들면서 펼쳐지는 회화적 표현이 독자를 압도한다. 환상의 사막에서 사랑하는 코끼리와 함께 크고 당당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 주인공은 엄마의 집, 아빠의 집을 오가면서 번갈아 포옹하고 관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다. 부모의 결별로 입은 상처를 뭉뚱그리거나 화해로 얼버무리지 않는 결말이 인상 깊다. 환상 속에서 유려했던 그림이 서툴지만 또박또박 그린 아이의 그림체로 되돌아오는 지점을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44쪽, 1만5000원.

김지은 어린이 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