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0년 전이다. 1997년 11월 21일 국가가 파산 위기에 몰리자 김영삼 정부는 허겁지겁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제2 경술국치’라는 관용어가 따라붙는 ‘IMF의 서곡(序曲)’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30대 재벌 중 16개가 퇴출됐다. 26개 은행 중 16개도 역사 속에 묻혔다. 실직자는 속출했고, 노숙자는 넘쳐났다. IMF가 요구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의 산물이다. 결국 2001년 8월,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한 뒤 ‘IMF 사태’에서 조기 졸업했다. 정부 무능과 기업 탐욕이 국민에게 얼마나 깊고 넓은 상처를 주는지를 깨닫게 한 재앙이었다.

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는 ‘위장된 축복’이라며 위로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축복을 누리고 있는 걸까. 외양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외환위기 방어 척도인 외환보유액은 20년 전 39억 달러까지 줄었지만 현재는 3845억 달러로 크게 불어났다. 투기등급인 ‘B+’로 급전직하했던 국가 신용등급은 일본보다 높은 ‘AA’다. 1990년대 만성 적자였던 경상수지도 65개월째 흑자 행진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많이 다르다. 정부가 성장률 목표를 3%대 초반으로 잡을 만큼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다. 외환위기 전 2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9%대였다. 지난 20년간 가계 가처분소득은 3배 가까이밖에 안 늘었지만, 금융부채는 6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청년실업도 최악이다. 원화가치·금리·유가가 뛰는 ‘3고(高)’만 출현하면 경제는 휘청대기 일쑤다.

한국 경제는 지금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덩어리와 노동 생산성 저하의 주범인 강성 노조, 무능·무책임 정치 등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구조개혁 더 미적대면 위기 또 닥친다’는 IMF의 참교훈을 아직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환란(換亂) 가능성은 확 줄었지만 더 큰 위기인 ‘금융·실물’ 복합 위기가 터질 공산이 크다”고 경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국민 고통이 따르는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은 외면한 채 표심만 끌어모으는 온갖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혹 우리 경제가 ‘뜨거운 냄비 속 이미 숨이 끊긴 개구리’가 돼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