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북(對北) 관련 언급이 유야무야 되거나 뒤집히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안보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비치고, 대통령 발언의 무게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북한을 가급적 자극하지 않겠다는 ‘저자세’ 경향까지 보여 더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군 1명이 귀순한 과정의 군 대응에 의문을 표시하며 “우리도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하는 게 국민이 생각하는 평균적 교전수칙이 아니겠냐”면서 교전수칙 수정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루 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JSA 교전수칙을 수정할 권한이 없다”면서 “대통령 발언은 지시가 아니라 국민 감정적 측면에서 한 말”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 발언을 묵살한 셈이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남측에 총격을 가한 것은 물론 직접 넘어왔다는 정황까지 뚜렷해졌다. 정상적인 청와대·군 참모라면 JSA 교전수칙이 유엔군사령부 소관이더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하는 게 당연하다. 휴전선은 대한민국이 지킨다는 결기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권한 없다’ 등의 무책임한 언행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교전수칙 변경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JSA 경비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사령부가 맡고 있지만,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임하고, 현장 경비는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한·미 양국 대통령의 통수를 따라야 한다. 문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당연히 교전수칙을 바꿀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지난 7월 29일 문 대통령은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 ‘독자적 대북 제재 부과 검토’를 지시했다. 그러나 빈말에 그쳤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지난 7∼8일)을 하루 앞두고 유엔 제재 결의안에 포함된 5개 북한 금융기관의 인사 18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하면서, 스스로 ‘시늉’임을 시사했다. 권력 핵심부의 북한 눈치보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