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6일 현장 기업인과 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명 의견이 담긴 ‘경제 현안 전문가 제언’을 김동연 부총리에게 전했다. 28쪽인 이 보고서는 각계 전문가가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예리한 분석을 통해 대안도 내놨다는 점에서 과거 재계의 일방적 건의에 비해 훨씬 무게가 실린 정책 제언이다. 현황 진단부터 예사롭지 않다. “예상보다 좋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갈 길이 숨이 찰 정도로 멀다”고 했다. “5년 후가 더 걱정”이라고도 했다. 잠복 뇌관으로 북핵, 통상 마찰, 가계부채, 미진한 기업 구조조정, 미국 금리 인상을 꼽기도 했다.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쏟아냈다. “성장과 연명에서 연명을 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어떤 방법론도 의미 없다”고 했다. 현 정부의 혁신성장과 관련, “혁신하지 않는 늙은 기업을 보호하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고 했다. 지지부진한 노동개혁에 대해선 “우리는 노동개혁에 착수조차 못 하고 있다”면서 “기업이 혁신에 나서도록 구(舊)시대적 노동시장 보호막을 걷어내라”고 촉구했다. 고임금 근로자까지 혜택받는 과속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재계가 ‘어려움이 많으니 해결해 달라’며 한계기업 연명을 위해 소원수리형 건의만 한 게 아닌지 뒤돌아본다”는 반성도 들어 있다.

이번 제언도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경제를 향해 숱하게 건넨 조언의 연장선이다. 회복기에 노동개혁을 단행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연례협의 결과 발표문을 통해 정부에 권고한 내용 그대로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처방과 진단을 되뇌는 건 그만큼 정부가 지속 가능한 경제 회생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행히 김 부총리는 “제언을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정말 그렇게 하는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