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5일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데 이어 여진이 계속되자, 경북 포항시의 한 아파트 주민이 가재도구를 차량에 싣고 아파트를 떠나려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트라우마’ 빠진 포항 르포

땅 꺼지고 집 무너지는 느낌
지진 다시 올 거라는 불안감
약국선 신경안정제 많이 팔려

친지집·호텔 등에 일단 대피
車에서 시동걸고 대기하기도

“자꾸만 땅이 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 같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어요. 아침에도 큰 지진이 또 발생하고, 더 큰 지진이 닥칠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양학동 왕복 8차선 도로변의 한 주유소.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이 20m 정도 길게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주유소 종업원은 “한적한 곳에 주유소가 있어서 평소 고객이 띄엄띄엄 찾았으나 지진 때문에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 승용차에 기름을 넣은 김모 (34) 씨는 “포항 도심을 벗어나 다소 안전한 외지에서 며칠 지내기 위해 휴가를 냈다”고 했다. 이 차량에는 라면, 초코파이, 이불, 텐트 등이 실려 있었다.

15일 규모 5.4의 강진에 이어 여진이 끊이지 않으면서 공포에 휩싸인 경북 포항 주민들의 엑소더스(집단탈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27㎞ 떨어진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 여파에 따른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지진이 발생하면서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호소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어 찾아간 지진 진앙 인근 흥해읍 한동대는 폐허처럼 조용했다. 전날 지진으로 건물이 크게 부서져 학교 측이 17일까지 휴강했다. 이 학교 기숙사생 3000여 명은 학교 측이 동원한 버스를 이용해 대구가톨릭대 등에 마련된 기숙사나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고향이 서울이라고 밝힌 서모(24) 씨는 “부산에 있는 친구 집에 당분간 머물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지진 임시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이모(여·67) 씨는 “사는 아파트가 곧 무너질 것 같아 황급히 뛰쳐나오는 바람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대구에 있는 딸에게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고 울먹였다. 흥해읍 곡강천 변에는 곳곳에 시동을 켜둔 차량이 있었고, 일부 주민은 경주 등지의 호텔로 피신했다.

여진이 지속하면서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강진 진앙인 흥해읍 망천리 주민들은 “바닥이 계속 흔들려서 속이 매스껍고 작은 소리에도 경기할 정도로 놀라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박모(45·포항시 장성동) 씨는 “밤사이 여진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불안감에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아 진정시킬 수 없었다”며 “시내 약국에서 신경안정제를 찾는 지인들도 많다”고 전했다. 포항시는 주민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심리지원실을 운영키로 했다.

포항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