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알아두면 쓸데없고 신기하지도 않은 잡다한 제 궁금증에서 시작됩니다. 영화 한 편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며 올려다본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말갛더군요. 그러다 문득 생각났습니다. “왜 일본 영화 제목은 죄다 문장이지?”

제가 본 영화는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였습니다. 불현듯 기억에 남는 일본 영화들을 하나씩 되짚어봤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등. 그리고 최근 개봉된 영화들을 살펴봐도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 문장식 제목이 참 많은데요. 왜 그런 걸까요? 오랜만에 궁금증 해소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습니다. 영화 평론가, 관련 학과 교수, 영화사 직원, 친한 영화 담당 기자 등등. 공통적인 반응은 “듣고 보니 그러네?”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명쾌한 답을 내진 못했죠.

가장 고개를 끄덕일 법한 ‘가설’은 문학 담당 선배 기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일본 영화는 소설이 원작인 경우가 많은데 원작을 존중하고, 원작의 명성에 기대는 차원에서 원작 소설의 문장형 제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무지의 갈증에서 벗어나고자, 제 몇 안 되는 일본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웹티비아시아 일본 지사장을 맡고 있는 켄은 “항상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일본의 문화를 반영하는 제목인 것 같다”며 “제목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대충은 알 것 같지 않냐”고 되물었죠. (참, 이 친구는 한국어를 아주 잘합니다.)

며칠에 걸친 탐문 끝에도 똑 떨어지는 답을 얻진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아주 선명하게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죠. ‘이 영화들이 정말 제목을 잘 지었네’라는 감탄이었습니다. 저랑 통화한 대부분의 지인이 언급된 영화들의 제목을 알고 있었는데요. 심지어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조차 그 제목만큼은 아는 눈치였죠. 끊임없이 명멸하는 영화들 속에서 ‘이름 몇 자’를 대중의 기억에 각인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은 ‘제목 장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사도, 책도, 노래도, 드라마나 영화 역시 “이름을 잘 지어야 잘 팔린다”는 거죠. 대동소이한 인생지침서도 ‘아프니까 청춘’이거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표현하니 더 와 닿는 것처럼 말이죠. 아무리 내실 있는 콘텐츠도 대중이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할 욕구를 갖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알아두면 쓸데없고 신기하지도 않은 잡다한 제 궁금증에서 시작된 이 글에도 어떤 제목을 붙여야 잘 읽힐지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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