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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최준영의 ‘동사의 삶’
페이스북 연재한 짧은 글 엮어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 등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웃과 함께해 온 인문학자. 그래서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로 불려온 인문학자 최준영(51·사진) 씨가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단상을 풀어낸 ‘동사의 삶’(푸른 영토)을 내놨다. 책 제목인 ‘동사의 삶’은 저자가 ‘명사의 삶’과 대비시켜 규정한 ‘자기 아이덴티티’다. 이때 명사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 명사(名詞)가 아니라 잘 알려진 유명인을 뜻하는 명사(名士)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로 등단했으나 영화 쪽보다는 책 읽기와 글 쓰기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입지를 다진 그는 2005년 KBS 라디오 프로그램 ‘명사의 책 읽기’에 출연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명사(名士)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설혹 그렇다 해도 좀 다르게 보자면 출연함으로써 명사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명사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동사의 삶에 가깝고요. 학위도 소속 대학도 없이 그저 떠돌아다니면서 강의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무심코 던진 ‘동사의 삶’이 그 뒤 그가 나아갈 삶의 지표가 됐다고 한다. 그는 동사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사의 삶은 멈추지 않는 삶이에요. 실패하고 좌절해도,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삶이고요. 동사의 삶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않아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이고요. 또 동사의 삶은 척박한 현실을 비관하지 않아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삶이거든요.”

책은 페이스북 인기 논객인 그가 300여 일 동안 페이스북에 ‘최준영의 뚜벅뚜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온 짧은 글들을 엮은 것이다. 그가 뚜벅뚜벅 삶을 걸어가며 느낀 단상들이 펼쳐지는데 중심은 책, 읽기, 쓰기다. 좋은 문장, 좋은 글,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스로 경험으로 익힌 책 읽는 법, 글 쓰는 법, 문장 가다듬는 법에 대한 조언이 세세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겐 삶과 함께 계속되는 공부다.

“공부에는 끝이 없어요. 다만 계속 이어감으로써 머릿속에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드는 것이에요. 그 공간이 나의 우주가 되고 내 인생이 될 것이고요.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게 너무 작다고 실망할 것 없어요. 지속적으로 공부하면 그 공간은 저절로 풍요로워지거든요. 저는 다만 읽을 뿐이에요. 저는 다만 쓸 뿐이고요. 또 저는 다만 믿을 뿐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다시 저는 읽을 뿐이죠.”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