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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악녀역 마친 손여은

“악역을 맡으니 스트레스만 더 쌓이던 걸요.”

SBS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극본 김순옥)를 마친 배우 손여은(사진)은 지독한 악녀로 살아온 지난 8개월을 이렇게 술회했다.

손여은은 이 드라마에서 재벌가의 딸이자 친구의 남편과 외도를 하는 악녀 구세경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너 따위가 감히” “절대 안 돼” “아무것도 안 뺏겨”라고 지독한 욕심을 부리던 그가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언니는 살아있다’의 시청률은 춤을 췄다. 그렇게 24%(닐슨코리아 기준)라는 높은 전국 시청률로 마침표를 찍은 손여은은 이제야 구세경을 내려놓은 듯 선한 표정으로 속내를 밝혔다.

“방송 전 작가님이 ‘스트레스가 풀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촬영하는 내내 화가 나 있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쌓였죠. 녹화를 마쳤다고 해서 극 중 누군가 저주하고 미워하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언니는 살아있다’는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에서 각각 신애리(김서형), 연민정(이유리)이라는 희대의 악녀 캐릭터를 빚었던 김순옥 작가의 차기작이었다. 김 작가는 한술 더 떠 이 드라마에는 구세경 외에 양달희(다솜), 이계화(양정아) 등 3명의 악녀를 동시에 포진했다. 먹이사슬에 얽히고설킨 세 악녀의 악다구니를 보는 것은 ‘언니는 살아있다’의 관전포인트였다. 드라마 후반부에 유방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구세경을 향해 시청자들은 “구세경을 살려달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측면에서 손여은의 악녀 도전은 성공이라 할 만하다.

“김 작가님의 전작에서 악녀를 연기했던 배우들이 워낙 이슈가 됐기 때문에 부담도 컸어요. 전형적인 악녀 연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누군가와 비교가 되기보다는 저 나름의 해석으로 구세경을 입체적으로 그려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시청자들도 공감을 해준 것 같아 뿌듯해요.”

어느덧 데뷔 13년 차, 서른 중반에 들어선 나이지만 손여은은 아직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배우다. 전작인 ‘피고인’에서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현모양처를 연기했고,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참한 줄 알았으나 응석받이에 반골 기질이 다분한 며느리를 실감 나게 연기해 눈길을 모았다. 피아노를 전공해 극 중 뛰어난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작품이 없어서, 소속사 문제가 생겨서, 그리고 연기를 못해서 생긴 공백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조금씩 발전하면서 연기를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특이하다’거나 ‘아이 같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연기적인 순수함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웃음)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차기작을 준비하겠다는 손여은. 악역을 소화하며 체력적 소모가 커서 수영과 필라테스를 하며 다음 작품에 임할 몸을 만들 계획이다. ‘언니는 살아있다’의 가장 열렬한 시청자였던 어머니와도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

“다시 채우기 위해 저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백지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죠.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런 배우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