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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말도 많았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끝에 시민참여단이 큰 차이로 건설 재개 쪽의 손을 들어 준 건 잘된 일이다. 그런데 이번 공론화위원회는 건설 재개 권고와 더불어 원전 비중 축소 에너지 정책 추진을 권고했다. 이는 시민참여단의 원전 축소 의견이 53.3%로, 유지·확대 의견 45.4%보다 다소 높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 권고는 8%포인트라는 작은 차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 점에서도 불합리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한 결과 도출’이라는 공론화위 본연의 임무를 벗어난 월권적 행위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권고를 통해 그간 누차 강조해온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탈(脫)원전 정책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원자력은 우리나라에 딱 맞는 에너지로서, 환경과 복지, 나아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에너지 믹스 내 적정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탈원전 정책이 그대로 추진되는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의 현격한 증가가 불가피해 전기료 인상, 외화 유출, 온실가스 증가 문제가 불거진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LNG 발전이 35%를 차지하게 돼 기존 정책에 비해 무려 24%포인트나 증가한다. 신재생에너지 증가분 6%포인트를 훨씬 앞서는 것이다.

그동안은 셰일가스 증산에 따라 가스 가격의 하향 안정세가 예상됐다. 그런데 지난 18일 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셰일오일의 생산성이 정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유가와 세일가스 가격의 상승 요인이 나타난 것이다. LNG 비중이 높아질수록 유가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폭은 커지고 발전원가의 70%가량 되는 외화의 유출액도 커진다. 또한, 원자력 감소분 16%를 훨씬 웃도는 LNG 전력 상승분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 문제도 일으킨다. 발전원가가 싼 원자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보조금 충당에도 필요하다. 비용과 환경 관점에서 원자력이 재생에너지와의 상생에 LNG보다 유리한 이유다.

한국에서 가동 중인 가압수형 원전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누적가동연수가 1만400년에 이르는 동안 치명적인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 안전성이 이미 입증됐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에서 설계 인증을 받은 APR1400은 기존의 원전보다 안전성이 10배 이상 향상된 제3세대 원전으로, 신고리 3호기의 가동을 통해 그 우수성이 확인됐다. 최근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등지에서 한국 원전 수입에 큰 관심을 보이는 데는 그 우수성과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한 요인이다.

원자력은 기후변화 대처에 매우 유효하고 에너지 빈곤층에 전력 복지를 제공하며, 안정적이고 싼 전력을 공급함과 아울러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과 고급 일자리를 창출에 기여한다. 탈원전 정책은 이런 원자력의 이점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가상의 사고 위험성에 대한 과도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수립됐다. 이런 두려움의 형성에는 탈핵 주창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공론화 기간에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여러 오해가 벗겨지고 편익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증진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사실 확인이 된 자료와 정보만을 바탕으로, 각 에너지원의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 에너지 믹스를 정하는 에너지 정책 공론화를 엄정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