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면서 “에너지 수급 안정성이 확인되는 대로 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 대통령의 주 메시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공사를 조속히 재개한다는 것이다. 공론화 작업 3개월 동안 1000억 원이 넘는 공사지체 비용이 발생했고, 찬·반 갈등으로 사회의 균열은 커졌다. 한국 원전 기술의 해외 신인도 추락 등 무형의 피해도 간단치 않다. 그러나 평지풍파를 일으킨 문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고, 사과·유감 표시도 없었다. 일요일 오후의 ‘서면 메시지’로 끝낸 것은 오만으로도 비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것도 공론화위에 비친 여론과 차이가 있다. 문 정부는 공론화위가 편법으로 끼워 넣어 얻은 ‘원전 축소 53.2%’에 기대는 모양이지만, 다른 조사 항목에서 ‘탈원전 정책 유지’에 찬성한 응답은 13.3%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급격한 탈원전 정책에 위기감을 느끼고 제동을 걸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근접한 진단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이런 기조를 반영한 탈원전 로드맵을 2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할 것이라고 한다. 공론화 의미를 치켜세우면서 제 입장을 고집하는 이율배반은 소통과 거리 멀다.

문 대통령의 ‘월성 1호기 중단’ 공언(公言)은 새로운 분란을 예고한다. 설계수명이 2012년까지였던 월성 1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 11월 20일까지로 10년 연장했다. 일부 주민의 무효소송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통령이 결론을 내는 건 사법부를 압박하는 월권이다. 원안위는 ‘가동 연장’ 편인데, 탈원전 압력을 받으면 입장을 뒤집어야 한다.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원전이 중도에 폐쇄된 사례는 없다. 원안위나 한국수력원자력을 동원해 조기 폐로에 나선다면 권력 남용 논란을 부를 것이다.

이 와중에 한수원이 500억 원 규모의 임원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탈원전 동조에 따른 ‘배임’ 책임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블랙코미디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 공약의 명분으로 ‘국민 안전’과 ‘환경권’을 제시했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에너지원(源)별로 장단점이 드러났다. 원자력이 곧 반(反)안전·반환경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원전 제로’ 도그마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