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0일간의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화학공장 근로자들이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본보-R&R, 300개 화학업체 설문 … “현실 외면…기업 옥죄는 法”

신고의무 EU의 ‘7.5배’ 확대
막대한 비용 부담 기업들 휘청
시험기관 등 인프라도 태부족

“독성시험 정부 대행” 32.7%
“등록의무 이행비 경감” 20.7%
존폐위기 기업들 정부에 호소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가운데 화학업계에서는 산업 현장 현실을 외면한 채 기업들만 옥죄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과도한 비용 부담과 신고대상 범위 확대 등으로 업체들이 법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화학업체들이 화평법 개정안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막대한 비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등록의무 대상인 화학물질은 현재 510종에서 7000여 종으로 늘어난다. 이는 14배가량으로 폭증하는 수치다.

문화일보가 시장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300개 화학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평법 계도 기간인 2018년 6월까지 화학물질 등록비용은 업체당 평균 19억12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내년 6월까지 현행 화평법상 등록하거나 신고해야 하는 물질 수는 평균 10개다. 개정안 시행 시 추가해야 하는 물질은 평균 6.5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물질 1개당 평균 등록 비용은 1억1590만 원으로 나타났다.

화학업체 관계자는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을 다 털어도 등록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등록의무 물질이 14배가량 늘어나면 대기업조차 재정적으로 감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규제가 엄격한 유럽연합(EU)보다 더 강력한 규제로 비현실적인 법안이란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개정안 통과 시 신고의무가 있는 유해 화학물질(800여 종)은 중점관리 물질(1300여 종)로 신고 범위가 확대된다. 이는 174종인 EU의 7.5배 수준이다. 적게는 수십여 가지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모든 제품에 함유된 1300여 종의 중점관리 화학물질을 일일이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시험기관 등 인프라가 부실한 것도 문제다. 화학물질을 등록하려면 전문 분석인력과 장비를 갖춘 시험기관을 통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지정한 국내 시험기관은 30개에 불과하다. 특정 물질은 분석할 수 있는 국내 기관이 전혀 없다. 결국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등록비용이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화평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피해를 줄이는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4월 말 기준, 등록대상 물질 510종 중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89종(17.5%)에 불과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동등록 협의체로 구성된 물질도 510종 중 323종(63.3%)뿐이다. 나머지 187종은 개별 기업이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이와 관련, 본지 설문조사에 응답한 기업 중 32.7%는 정부에 요청하는 개선안으로 ‘화학물질 독성 시험을 정부가 대행해 달라’고 답했다. 이어 ‘등록의무 이행 비용 경감(20.7%)’, ‘중점관리 물질 최소화(18.0%)’, ‘유해성 평가 등 전문 시험기관부터 확대 후 시행(15.0%)’ 등 순으로 응답 기업이 많았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