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

- 건보심평원 통계 분석

취업·경쟁 스트레스에 증가
“TV보며 소주 3병 혼술 습관”
“블랙아웃 자주 와 무서워”
과일맛 저도주 女폭음도 급증

“1년 365일 중 360일을 술을 마신 26세 직장인입니다.”

얼마 전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찾은 A(여·26) 씨는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지내왔는데 요즘 들어 블랙아웃(과음으로 인한 기억상실)도 자주 경험해 무서워졌다”면서 “술이 나를 삼켜버린 느낌이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참석자 B(27) 씨는 “이틀 연속 술을 안 마신 건 군대에 있을 때뿐”이라며 “숙취 때문에 할 일을 못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왜 이러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괴로워했다.

취업 및 업무 스트레스나 불안감 등으로 알코올에 빠져 후유증을 앓는 20대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정의당) 의원이 1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2016년 사이 30대와 40대, 50대에서 모두 알코올 중독 환자가 감소한 것과 달리 20대에서는 증가추세를 보였다. 20대 환자는 2012년 4415명에서 2016년 5337명으로 20.9% 증가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나는 알콜중독자다’ 카페 운영자 이의재(44) 씨는 “20대 회원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젊을 때는 건강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술을 즐기는 사람’ 정도로 본인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커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20대 정신 건강 악화는 학업과 취업준비에 따른 스트레스, 불안감 증가 등 경쟁적인 경제·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겪게 됐다는 경험담도 잇따랐다. 영화제작사 PD인 서모(여·28) 씨는 혼자 TV를 보면서 소주 3병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

김 씨는 “생활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편한 시간대에 술을 찾게 됐다”며 “술 때문에 촬영장에 지각하는 경우가 잦고 ‘푸석푸석해졌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업무상 술자리에 대한 반감으로 ‘혼술’ 재미에 빠졌다는 대기업 홍보팀 직원 현모(여·29) 씨는 “사소한 기억이 지워지는 기분이 든다”며 “얼마 전엔 연인과 함께 본 영화 제목을 까맣게 잊는 바람에 다툴 뻔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김모(27) 씨는 “처음엔 술자리가 싫었는데 이젠 약속이 없으면 불안해 자발적으로 술자리를 만든다”며 “과음한 다음 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떨릴 때 무서운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삶의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아주대 심리학과 석사 임수경·이민규 씨는 ‘알코올과 건강 행동 연구’ 7월호에 실은 논문을 통해 대학생의 폭음 정도와 삶의 목표와 의미 등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들은 “폭음하지 않을수록 삶의 목표에 더 몰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술을 권하는 관대한 음주 문화 탓에 알코올 관련 장애 유병률이 유독 높은 편”이라며 “과일 맛 소주 등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이 출시되면서 20대 여성 알코올 중독이 급증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민·김현아·이희권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