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퇴학 처분만 재심 허용
법적절차 이외 구제수단 없어
지난해 행정심판 302건 달해
전문성 낮은 학폭위 개선 필요

서울 한 초등학교 6학년생 A 군은 지난 9월 동급생이 5학년 후배 학생의 머리를 때린 사건에 얽혀 학교 폭력 가해자로 몰렸다. 폭행이 일어나기 전 A 군과 그 후배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왜 쳐다보냐’는 시비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A 군이 후배를 혼내주자며 친구와 모의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했고, 당사자 진술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다. 학폭위는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명백하게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A 군에게 1호(서면 사과) 및 2호(학생 접촉 및 보복 금지) 처분을 내렸다. A 군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적 대응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학폭위 처분 중 8호(전학)와 9호(퇴학)를 제외하면 재심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학폭위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7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6학년도에만 전국적으로 학폭위에서 다룬 사건이 총 2만3637건이었다. 이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측에서 청구한 행정심판도 302건에 이른다. 교육부 관계자는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은 대부분 1∼7호 처분을 받은 경우로 볼 수 있다”며 “8·9호 처분은 학생이 학적을 옮겨야 하기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재심 절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의 한 중학교 2학년생 B 양의 어머니는 최근 행정심판 청구를 위해 행정사를 고용했다. B 양 동급생의 할머니가 ‘B 양이 우리 손녀를 괴롭힌다’고 주장, B 양은 학폭위에 불려갔다. 학폭위에서는 “가해 사실과 증거는 없지만, 피해자가 있다”는 이유로 1·2호 처분을 내렸다. B 양의 어머니는 “학폭위 결정은 내 딸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네가 안고 가야 한다’고 한 것”이라며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비를 가리기 위해 행정사를 통해 행정심판을 준비하고 있고, 행정소송까지 갈 생각”이라고 격분했다.

1∼7호 처분에 재심 제도가 없는 건 재심이 남용돼 학폭위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폭위가 사실상 형사재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도, 전문성 없는 학폭위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 당사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학폭위 위원 중 절반 이상이 학부모 위원이고 나머지는 학교 교사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학폭위에 학교전담경찰관(SPO)도 참여하긴 하지만, 수사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 국회에는 올해만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1건이나 발의됐다. 이 중에는 학폭위를 학교 외부에 설치하거나, 위원 중 전문가 비율을 높이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 교수(학교폭력예방연구소 부소장)는 “학폭위는 화해와 교우 관계 회복, 학교 폭력 예방이 주목적이기에 이에 맞는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