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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으면 미련이 남기 마련

골프 라운드를 하면서 순간순간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9번 혹은 8번 아이언? 볼을 띄울까, 굴릴까? 클럽 헤드를 열고 칠까, 닫고 칠까? 핀을 바로 공격할까, 끊어가야 할까? 중요한 경기이고 샷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신중해진다.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이것저것 따져 보고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머뭇거리게 되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신중함이 지나치면 신중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유부단함이다. 여기서 우유부단은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뜻한다. 확신을 못 하니 캐디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이런 결정은 미련이 많이 남는 법이다.

어렵게 결정한 샷은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샷 직전까지 한 클럽 작지 않을까? 한 클럽 크지 않을까? 굴리기에는 내리막이 가파른 것 아닌가? 끊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등등의 의구심이 든다. 이것은 샷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다음 샷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 한 클럽 크게 잡았어야 했는데’ ‘띄웠어야 했는데’ ‘끊어갔어야 했는데’란 후회는 그다음 샷의 집중을 방해한다.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은 유기체는 몇 가지의 원리에 입각해 사물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고 했다. 원리 중 하나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다. 즉 유기체는 사물을 볼 때, 혹은 상황을 지각하고 판단할 때, 초점 사물(전경)과 그 뒷부분(배경)으로 구분한다. 전경과 배경의 경계가 분명해야 사물을 보든 상황을 판단하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전경과 배경이 불분명하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없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기가 어렵단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과제(미해결 과제)가 남아 있으면 전경과 배경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교 3학년 학생이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뵙고 싶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수업을 빠질 수가 없다. 학생은 수업에 참여했지만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해(미해결 과제) 아버지의 입원 소식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수업이 전경이고 그 외의 것은 배경으로 잊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론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전경이 되고 수업이 배경이 돼 버리는 셈이다.

마찬가지다. 고민 끝에 한 샷의 결과가 나쁘더라도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미련이 많을수록 잊기가 힘들다. ‘한 클럽 크게 잡았어야 했는데’란 생각이 들면, 다음 샷에 집중하기 어렵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다음 샷이 전경이 돼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한 클럽 크게’가 전경이 되면 다음 샷을 말할 필요가 없다. 골프를 잘하려면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결정했다면 확신을 갖고 샷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현역 시절의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사진)만큼 확신에 차 있고 단호하게 경기를 펼친 선수는 찾기 어렵다. 골프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게임이다. 마지막 라운드 중반까지도 예측하기 힘들 때가 많다. 우승은 마지막 날 선수의 컨디션에 의해 결정될 때가 많다. 하지만 소렌스탐은 늘 이러한 상식을 깼다. 소렌스탐과 함께 활동했던 로지 존스(미국)는 “소렌스탐도 마지막 날 선두의 부담을 순간순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다음 샷에서 그는 여전히 그림같이 멋진 샷으로 파를 잡아내거나 버디를 잡았다. 그게 나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존스는 소렌스탐의 경기력에 대해 “정말 견고했다”고 평가했다. 소렌스탐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특히 골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항상 조심한다. 조용히 홀을 공략한다. 하지만 홀을 공략할 때라고 확신이 들면 쇼트 아이언으로 핀을 바로 노린다”고 말했다.

삶은 골프만큼이나 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신중함은 삼가야 한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 또한 어떤 결과든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떠올리며 신중한 것과 생각이 많은 것의 차이는 물론 ‘여기-지금(here and now)’의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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