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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

정부가 북한에 800만 달러(약 9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려는 것과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15일 중장거리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오는 21일로 예정된 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지원이 결정된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지원 사례가 된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안 제2375호가 채택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적잖은 파장이 우려된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4일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인도적 지원은 안보적인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와중에 문 대통령은 14일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해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우리가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서 군사력 증강은 필요하지만,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주는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잇단 우리 정부의 대북 유화적 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전쟁을 야기하고, 협상 노력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된 게 아닌지 걱정된다. 역설적으로 보면 전쟁을 막기 위해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고 그러한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해 평화가 가능한 것이다. 유화 정책은 공격적인 국가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전쟁 발발을 막을 것이란 가정에 기초한다. 이는 공격적인 국가는 결코 그러한 방식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더 강하게 하면서 그들의 권력욕을 더 키워줄 수 있다. 결국, 그런 정책은 전쟁의 위험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키우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과 프랑스는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에게 유화정책을 추구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북한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진 지금은 이미 레드라인을 넘은 상황이다. 이제 사고도 달라져야 한다. 북한이 어떤 제재와 압박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인정해주자는 논리도,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현 상태에서 동결시킬 수 있다는 논리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화를 통한 해결은 우리가 힘을 갖고 있을 때 작동한다.

1990년대 이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의도를 다루는 논쟁이 진보와 보수 학자 간에 있어 왔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진보 진영의 논리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는 ‘수단’이라는 것이고, 보수 진영의 논리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묻고 싶다.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이 과연 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아니면 정권안보를 위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목적이었는지.

북한 김정은은 15일에도 3700㎞ 밖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제는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지막 선택을 할 때다. 현 정부가 집권 전에 내놓은 외교안보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과감히 그 프로그램을 내려놓고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아직도 과거의 인식에 매몰돼 오늘의 상황을 왜곡시키는 우(愚)를 범할 것인가. 주한미군 철수와 신(新)애치슨라인 논의가 점점 그럴듯하게 들려오는 현실을 언제까지 외면하기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