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2일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원주시 명륜동 따뚜공연장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습하고 있다.

‘음악봉사’원주 실버윈드 오케스트라

“은퇴 후 음악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강원 원주에 은퇴자들로 구성된 밴드가 있다. 지난 2004년 ‘노년의 여정을 즐겁게 봉사하며 보내자’는 취지로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다.

지난 12일 오후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정기 연습 일에 맞춰 원주 따뚜공연장에 마련된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시간에 맞춰 백발이 성성한 단원들이 저마다 악기 가방을 메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매주 화, 금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간씩 연습을 하고 있다. 교사를 비롯해 대학교수, 공무원, 군인, 경찰, 사업가 등 출신은 다르지만 은퇴 후 악기로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한마음으로 뭉쳤다. 단원들은 학창시절 밴드부를 했거나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이 취미로 악기를 다루다 은퇴 후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는 군인 출신의 류순상(68) 씨는 “현역에 있으면서 은퇴 후 음악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틈틈이 악기 연주를 했다”며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을 듣고 기꺼이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습실의 지정석에 자리를 잡은 단원들은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드럼 등 악기를 꺼내 들고 연습을 시작했다. 내달 20일 열리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초청을 받아 맹연습 중이다. 연습실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원주시의 배려로 2014년 따뚜공연장에 자리를 잡았다.

지휘자 겸 단장인 김병헌(79) 씨의 신호에 맞춰 단원들은 일제히 연주를 시작했다. 웅장한 악기 소리가 연습장 실내를 가득 채웠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실력을 인정받아 지역의 각종 축제와 행사에 초청돼 연간 20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지역의 대표적인 밴드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와 장애인, 노인 등 지역의 복지시설을 찾아 위문공연도 하고 있다. 매년 5월에는 정기연주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의 소문이 퍼지면서 타 지역 사람들이 실버악단에 들어오고 싶다는 전화 문의가 이어지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2004년 1월 김 단장이 중심이 돼 창단됐다. 원주지역 음악의 산증인인 김 단장은 원주시 노인종합복지관의 요청에 흔쾌히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를 창단, 벌써 14년째 백발의 연주자들을 이끌고 있다.

처음 3명으로 출발한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음악으로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현재 3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60세부터 79세까지 고령의 단원들은 음악으로 봉사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원주부시장을 지낸 신창근(65) 씨는 “노후를 위해 공직생활을 하면서 취미 삼아 색소폰을 배웠다”며 “음악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힘들지만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에서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이어온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4년 전부터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오랜 식민지 생활을 거치고, 최근까지 군부정권이 집권하면서 우리나라 1950년대와 비슷한 여건의 아프리카 빈국에 속한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조차 없어 어린이들이 이렇다 할 교육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인을 통해 딱한 소식을 접한 김 단장은 단원들과 함께 고 이태석 신부의 감동 실화 ‘울지마 톤즈’에 등장하는 브라스밴드처럼 마다가스카르 어린이들에게 연주와 노래를 지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음악을 모르는 현지 어린이들을 위해 2014년부터 매년 마다가스카르 툴레아 지역을 찾아 음악이론부터 오선지 보는 법, 악기연주법 등을 가르쳤다. 밴드를 구성하기 위해 악기도 직접 한국에서 공수해 갔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의 아프리카 밴드 구성 소식이 알려지면서 각계에서 중고 악기는 물론, 후원금과 각종 비품을 기증했다. 단원들은 6개월간 기부를 받은 관악기 21점을 비롯해 타악기, 리듬악기, 국악기 15점 등 모두 36점의 악기를 아프리카 현지로 가져갔다. 비행기와 차로 48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생길이었지만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의 노력 덕분에 아프리카의 이름없는 작은 마을에 34인조의 ‘마다가스카르 쌘뽈 밴드’가 창단됐다. 2015년 마다가스카르 툴레아 지역 최초의 오케스트라 밴드인 마다가스카르 쌘뽈 밴드는 종합발표회를 열어 아리랑을 연주하는 등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단원들로부터 전수받은 밴드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김 단장은 “내놓을 악기가 없는 사람들은 후원금으로 정성을 모아 주었다”며 “그 덕분에 운송비는 물론, 음악교육을 위해 필요한 소모품, 교본 등을 어려움 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우리의 작은 정성과 바람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음악가의 꿈을 꾸게 해주고 싶었다”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음악을 통해 희망과 기쁨을 배우고 주위에 감동을 전파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인연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다가스카르를 찾아 음악을 전파하던 김 단장과 단원들은 나눔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툴레아에서 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현지인을 한국으로 초청해 직접 음악을 가르치기로 했다. 고령의 나이에 머나먼 마다가스카르를 매년 찾기란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지난해와 올해 신부 1명과 수녀 2명 등 4명을 원주로 초청해 6개월 동안 음악 교육을 했다. 지휘법은 물론, 피아노 등 악기 연주법을 처음부터 가르쳤다. 이들의 노력은 5월 열린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때 함께 무대에 서는 결실로 이어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와 이들의 협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정기연주회 협연을 무사히 마친 이들은 마다가스카르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아프리카로 돌아가 수백, 수천 명의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현지 어린이 중 우수 학생도 원주로 데려와 음악교육을 하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국외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힌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의 봉사활동은 쉼이 없다. 원주 따뚜공연장 연습실 스케줄 표에는 다음달까지 공연 일정이 잡혀 있다. 지역을 위한 봉사 현장이라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금관 파트 연주자가 부족해 충원이 필요하지만 연주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데 상당한 힘이 들어 은퇴 후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는 어쩔 수 없이 공식 연주회에서는 객원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을 치르고 있다.

이용구(72) 부단장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니 연주에 힘이 많이 드는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금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시민이 있다면 원주 실버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주=글·사진 백오인 기자 105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