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름다운 날.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경기 가평군에 있는 C 골프장에서 모처럼 A 캐디 덕분에 맘껏 웃었다. 동반자들은 식사를 하면서 A 캐디와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냈다. A 캐디는 적당한 수위를 넘나들면서 골퍼 유형을 묘사하고, 골퍼들이 잘하는 말과 욕을 흉내 냈다.

A 캐디는 최근 유행하는 골프 ‘용어’를 뛰어나게 구사하면서 일행을 만족시켰다. 예를 들어 목단도장(나무에 맞으면 단타, 도로에 맞으면 장타), 목생도사(나무에 맞으면 살고, 도로에 맞으면 죽는다), 천고마비(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비워라), 굿샷의 반대말은 볼 등을 입에 올리면서 라운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야담까지 적절하게 섞었고, 그의 말을 듣다 보니 18홀이 진짜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성 골퍼도 있었지만, A 캐디의 말이 거슬리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단다.

여성 골퍼는 “오히려 정말 오랜만에 웃으면서 즐겁게 라운드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요즘 골퍼들은 골프장에서 신이 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골프장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것들로 인해 경직되는 판에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캐디와 골프장 여직원을 상대로 한 일부 몰지각한 골퍼들의 성희롱 사건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상대방이 들었을 때 불쾌하다면 성희롱이 성립된다는 법적 요건으로 인해 골프장이 많이 ‘건조’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골퍼와 직원, 그리고 동반자 간에도 오해성 발언과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즐기려던 골프장 라운드가 점점 재미없어졌고, 웃음이 사라졌다. 세상이 너무 삭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기본 욕구인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고, 놀고 싶은 본성이 있다. 일하는 것은 놀기 위한 준비인 셈이다. 그 놀이 중 하나가 바로 골프다. 놀이와 재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보상받고 싶어 한다. 자연에서 맘껏 웃으며 라운드를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다.

골프장에서는 좀 더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끼고 또 베풀었으면 한다. 물론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과한 행동과 언어는 삼가야겠지만 골프장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면 놀이가치를 잃는 셈이다.

프린스턴대 제이슨 박사는 웃음만큼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일본의 혼다자동차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기업문화를 지니고 있다. A 캐디는 “이 일이 즐거워 세 자매가 모두 함께 일하고 있다”면서 “오늘 많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내내 A 캐디 덕분에 오늘 놀 권리를 충분하게 보상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