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자료 파쇄 지시 임원 영장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한국형 전투기(KF-X·보라매) 사업 회계장부에서 구체적인 회계사기(분식회계)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12일 전해졌다. 특히 KAI 중견 임원이 검찰의 수사망을 피하고자 KF-X 사업 관련 자료의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며 지지부진했던 KAI 분식회계 수사는 새로운 활로가 열리게 됐다. 검찰은 하성용(66) 전 사장이 ‘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회계 사기를 지시·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KAI 경영진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박모 KAI 개발사업관리본부 상무는 지난달 KF-X 사업과 관련해 하 전 사장 등 경영진에 보고된 자료를 파쇄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이용일)가 회계사기 수사를 위해 실무자를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한창 벌일 때였다. 박 상무가 파쇄를 지시한 자료에는 KF-X 사업과 관련, 일하지 않은 협력업체에 공정이 진행돼 1000억∼2000억 원 사이의 비용을 지급한 것처럼 허위로 매출을 잡은 회계장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 인멸 교사 혐의를 받는 박 상무는 이르면 13일 구속영장 심사를 거쳐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검찰은 특히 KAI의 회계사기에 하 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하 전 사장의 연임과 성과급 인상을 위한 무리한 실적 부풀리기가 자리한다고 의심한다.

검찰 관계자는 “실무자들이 검찰에 제출하려던 자료를 회사 임원이 무리하게 증거 인멸을 강행한 것 자체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회사 차원의 조직적 비리를 의심케 하는 정황”이라고 말했다. 하 전 사장은 평소 주변 경영진에게 “CEO로서의 능력은 주가로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 전 사장의 취임 후 KAI는 2014년 1612억 원, 2015년 2856억 원, 2016년 3149억 원 등으로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